[월요논단] 벤처기업의 범주와 지원

李天杓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벤처기업은 벤처기업이 갖고 있는 창의성, 모험성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제적 인식과 문화가 탄탄할 때 활성화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 선도하고 있는 소위 「벤처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제고하고 벤처기업 관련 실증 및 정책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이러한 관심과 논의가 지속될 경우 벤처기업의 기본정신인 모험성과 창의성이 높이 평가되고 그로써 이들 노력이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문화적 토양은 공고하게 정착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벤처기업가가 하나의 사업에 실패했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업에 다시 이용해 재기하게 되는 벤처문화 조성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정부가 벤처기업의 범주를 미리 정해 놓고 이 범주에 속하는 기업에게 지원과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차별적 지원방식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선택적 지원정책은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낙후된 금융구조 아래 자원배분을 원활히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그것은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우선 벤처기업 범주에 속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무리한 벤처캐피털의 수요를 추구하도록 만들고 이는 오히려 자원배분의 비효율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은 증가할 것이다. 또 벤처기업의 범주에 속하는 기업을 끊임없이 검토해야 하는 행정절차는 효율적이기 어렵고 법적용의 오류와 부적절성에 대한 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

벤처기업은 성장과정에서 소유지분 변화, 기술개발 투자비율 변화, 무형자산의 거래 등을 수반하면서 얼마든지 벤처기업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는 또 벤처기업에 대한 일관성 있는 지원이 어렵게 되는 문제점도 있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정부의 지원과 혜택이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상품으로 전환시키려는 벤처기업의 도전정신과 진취적 기업행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가 벤처기업의 범주를 규정해 놓고 여기에 속하는 기업을 차별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벤처기업특별법에서의 지원정책은 한시적으로만 타당하다. 나아가 특별법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는 관련된 개별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것이므로 궁긍적으로 개별법률에 의해 대체돼야 한다.

벤처기업이라는 기업군과 관련시장이 형성, 발전해 경제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은 장기적이며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스톡옵션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세제지원의 효과는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전환 및 이것을 채택하는 벤처기업의 수, 코스닥의 발달, 성공사례의 범사회적 확산에 의존하므로 단기적인 정책평가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장기적인 정책효과를 기대해야 한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벤처기업 관련시장의 형성과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의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관련시장의 실패가 또한 심각한 분야이다.

시장의 기능제고를 위한 법, 제도의 개선에 더해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창업환경 조성기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창업자가 창업을 위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창업보육센터의 설립을 적극 지원해주고, 창업보육센터는 입주기업으로 하여금 사업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작업공간과 시설을 제공해주면서 기술, 인력, 자금, 특허, 회계 등 필요한 자원을 알선, 중개하는 등의 창업지원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데 노력해야 한다. 벤처캐피털 및 나스닥 등 벤처기업 관련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정부의 창업지원이 매우 활성화해 있으며 이것은 일종의 공공재로 인식돼 있다.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창업환경 조성기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에서 가장 강조돼야 할 것은 잠재적 벤처기업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는 벤처기업의 토양을 배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벤처기업의 활발한 창업은 근본적으로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축적과 우수한 전문인력의 보유정도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효율화에 힘써야 한다.

더불어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제도의 혁신적 개혁 및 인력투자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