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이 사는 방을 엿본다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현미는 디주리두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실내로 불안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조심스럽게 들어서면서 그 프로메테우스의 그림과 촛불의 흔적을 보게 된 것이다.
촛불.
촛불은 혼자서 탄다. 두 개를 합쳐 놓아도 두 개의 불꽃으로 탈 뿐,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다. 촛불은 시중드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형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숨겨진 눈물이 임의롭게, 임의로운 홈을 따라 흘러내린다.
아궁이와 난로의 불은 그것을 쑤석거리면 불꽃이 거세어진다. 하지만 촛불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타는 촛불은 더 이상의 의존이 필요 없다. 필요한 때 장작을 더 넣고, 불이 더욱 거세어지면 더 따뜻하게 되는 것을 느끼며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된다. 수직적이며, 상승적인 욕구를 위해 위로 거세게 타오르는 불 앞에서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적 행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촛불은 그렇지 않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는 다른 모양이며 다른 형태로 타 들어간다. 난로와 아궁이의 불꽃은 무엇이 타든 하나가 된다. 하지만 촛불의 불꽃은 각각이다. 혼자이고, 또 그것은 혼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두 개의 촛불의 심지에 심지를 맞대어 놓아도 불꽃은 다만 더 커지고 상승할 뿐, 결코 합하여지지 않는다. 각각 그 뾰족함의 미묘함을 꼭대기에 지키면서 수직성의 에네르기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촛불이다.
왜일까.
프로메테우스의 그림 아래, 심지는 다 타고 촛농만 남아 있는 촛불의 흔적을 보면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혜경이 늘 이야기하던 촛불의 미학이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미는 다시 한 번 혜경씨, 혜경씨 하고 외쳤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 그리고 테라코타가 창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으로 침대가 보였다. 그 위에 사람이 있었다. 잠든 것처럼 그렇게 누워 있었다.
뿌아아아아아아-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혜경.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순간, 현미는 「루이 에미에」의 「불의 이름」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의 고독은 벌써 준비되었다.
그것을 태우려고 하는 것을 태우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