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격동의 한해 부품업계 올 10대 이슈 (1);자금난

전자부품업체들은 올해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또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반도체 거품이 급속히 걷히면서 경기연착륙이 실패로 돌아간데다 세트업체들이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극복한다며 해외진출 러시를 이루는 바람에 국내 산업의 공동화가 발생했다. 부품업체들은 이로인해 전품목에 걸쳐 가격폭락 사태를 겪었으며 어쩔수 없이 세트업체와의 동반진출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또 세트산업의 해외공장 이전은 부품산업의 구조조정을 수반했으며 이로인한 혼란의 와중에 벤처기업들이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부품산업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알을 깨는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외화부족으로 야기된 금융불안과 신용공황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어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형국에까지 이르고 있다. 격변의 올 한해 10대 이슈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개미군단으로 불리면서 국내 전자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중소부품업체들이 외화부족으로 시작된 금융불안으로 최악의 자금난에 허덕이며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부분 영세한데다 국내 세트업체와 수직계열화된 국내 부품업체들은 평소에도 운전자금이 넉넉치 못해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할인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례였다.

그러나 IMF가 구제금융 협상에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국제수준으로 높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은행들이 일제히 신규 대출 중단과 기존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중소업체들의 돈가뭄은 극심해지고 있다. 은행들은 규모가 영세하고 부도 위험이 큰 중소 부품업체들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중단을 시작했다. 은행의 대출중지로 운전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린 중소업체들은 그나마 유지돼오던 대기업들이 발행한 어음의 할인마저 중단돼 흑자도산의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대기업들이 연쇄도산하는 바람에 금융권이 대기업들의 어음도 할인을 기피하는 바람에 납품대금을 대부분 어음으로 결제받고 있는 중소부품업체들은 금융권의 자금을 쓸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중소부품업체들은 이제 어음할인은 고사하고 대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그동안 받아놓은 어음마저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는 살음판을 걷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부품업체들의 자금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BIS기준에 맞게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폐쇄를 당할 위험에 처해진 금융권이 수입신용장은 물론 수출신용장 개설을 기피하고 극심한 자금난에 처한 대기업들마저 중소부품업체들을 쥐어짜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은 은행들의 수입신용장 개설 회피로 어쩔수 없이 대금을 먼저 지불하고 원자재를 수입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수출신용장을 개설해주지 않아 수출선수금으로 자금을 마련하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좌절되고 있을 뿐더러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클레임을 당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또 대기업들이 로컬수출용으로 납품한 부품 대금을 원화로 결제하겠다고 나서 엄청난 환차손을 겪을 처지에 놓여있다.

국내 세트업체들의 횡포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오던 중소 부품업체들은 이제 뼈저린 배신감과 좌절로 사업의욕을 상실해가고 있다. 단군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현재의 사정이 결코 자기네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참형의 칼날을 가장 먼저 받고 있다는 억울함 때문이다. 중소업체 육성이라는 구호를 외쳐오던 정부는 발등의 불을 만나 중소업체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십수년간 동고동락해온 대기업들과 은행마저 자기네만 살겠다고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중소 부품업체들은 『무대책이 상책이다』라는 말로 지금의 사정을 야유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