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NC장치 개발사업 (중);추진과정서 나타난 문제점

총 4년간의 수치제어(NC)장치 개발기간 중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8개 세부 과제별 개발은 어느 정도 목표대로 진행돼 왔으나 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생산물량 확보 및 생산방식,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에 관한 문제는 아직 확정된 방침이 없어 자칫 이 프로젝트가 부실공사로 끝날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출연금 축소와 개발기간 단축 문제 △시스템 통합 및 안정성 확보 문제 △최소 생산물량 확보를 위한 물량 배분 문제 △참여업체간 이익 배분 등 이해관계 문제 등이다.

우선 정부 출연금 축소와 개발기간 단축 문제는 1차연도의 경우 정부 14억5천만원과 민간 15억5천만원 등 약 30억원이 투입됐고 2차연도에는 정부 38억원, 민간 40억원 등 총 78억원이 투입됐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차연도에만 약 2백억원이 투입됐어야 했다.

특히 3차연도의 경우 시제품 제작과 표준화 작업, 신뢰성 테스트와 기계시험 장착 등 NC장치 개발과정 중 가장 중요한 단계여서 총 1백60억원이 필요해 정부에 78억원을 신청했으나 49억원 지원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고 민간 투입분도 50억원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1차연도 이후 정부의 출연금이 자꾸 줄어들자 NC공작기계연구조합은 이미 2차연도 중 총 사업규모를 정부 1백97억원, 민간 2백4억원 등 총 4백1억원 규모로 축소했으나 3차연도까지 투입분이 총 2백10억원 수준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여 이 프로젝트 규모는 당초 예상금액인 6백2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정부는 1차연도 진행 중 무역수지 개선과 자본재산업 조기육성 차원에서 업계와 사전 조율없이 사업 개시 당시 5년이었던 개발기간을 4년으로 단축했다.

물론 개발기간이 줄어든 대신 참여 연구원의 수를 대폭 늘리고 아웃소싱을 통해 개발을 집중화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나 개발자금이 축소된 마당에 이같은 대안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실제 개발기간이 단축됨에 따라 NC연구조합은 최종 개발 목표도 하향 조정, 소프트웨어의 경우 사양을 조정하면 기간내 개발이 가능하지만 하드웨어 부문은 축소할 부분이 거의 없어 기간내 개발이 어려운 형편이다.

또한 시스템 통합 및 안정성 확보 문제는 개발될 컴퓨터 수치제어(CNC)장치의 신뢰도 및 수요처 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8개 과제별 주관기업이 나눠 있어 각자 개발한 부분을 모아 하나의 제품으로 통합할 때 과연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며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기아중공업의 경우 자사 출연금은 물론 정부지원 자금까지 주거래은행에서 상계 처리해 개발 진행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내장돼야 각종 성능 평가 및 다음 단계 개발이 진행되므로 기아중공업 문제가 사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CNC장치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생산단계에 접어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현재까지 생산방식으로 논의되는 것은 과제별 주관업체가 맡은 부분을 제조하고 조립회사를 설립해 생산, 판매하는 방안과 NC공작기계연구조합이 중심이 돼 조립 및 판매를 전담하는 방안이 유력한데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으며 생산공장 확보, 라인설비 구비, 생산 및 판매인력 확보, 참여업체간 수익배분 문제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또 CNC장치는 공작기계의 성능을 결정짓는 초정밀기기이므로 최소 3년에서 5년간은 현장 테스트를 거쳐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안정성이 확보되기 전에는 어느 업체도 개발될 CNC 장치를 구입해 자사의 기계에 장착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 이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삼성전자, 터보테크, 두산기계, 기아중공업 등도 프로젝트와 별개로 CNC장치를 이미 개발, 자사의 공작기계에 부착해 판매하고 있으며 점차 그 비중을 높일 계획이어서 양산을 위한 최소 생산물량 확보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CNC장치의 국산화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볼 때 양산이 어렵다는 것은 이 사업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선진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개방형 CNC장치를 성공적으로 개발, 상품화 한다고 해도 매우 빠른 이 분야의 발전속도를 감안할 때 이 제품은 이미 구제품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어 정부와 업계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NC장치 개발 프로젝트는 혁신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사상 최대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