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은 90년대 초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돼 기업의 정보화를 구현하는 최신 방법론으로 각광받으면서 시스템통합(SI) 사업의 핵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이 오래 전부터 ERP패키지를 통한 새로운 경영재구축 노력에서 효과를 보고 있듯이 국내기업들도 시장경쟁 여건의 악화에 따른 경쟁력 확보의 실마리를 ERP라는 도구에서 찾기 때문이다.
지난 3, 4년간 이 새로운 기업재구축(BPR) 개념의 ERP시스템 도입이 활성화되긴 했으나 이 작업이 전사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돼왔다.
최근 일부 ERP구축업체를 중심으로 『ERP시스템 구축을 완료하도록 맡겨놓기만 하면 경영합리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 고객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 기업이 개최한 ERP세미나에서 『선진국의 ERP구축 성공률이 25%에 불과하다』며 고객들에게 시스템구축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ERP구축에 필요한 사전준비로 기존의 장비활용이나 ERP에 대한 경영진, 간부, 현장 근로자에 이르는 교육계획, 향후 유지, 보수 계획 등이 세심히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기업들의 ERP시스템 구축사례를 보면 단연 외국 유명기업과 컨설팅회사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에서 앞선 외국 유명 ERP업체들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사이트를 갖고 있는 등 경험상의 이점, 그리고 한국적 환경을 함께 고려해 개발한 이른바 「한국화 모듈」까지 앞세우면서 한국시장 공략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외국 유명 ERP업체들이 이처럼 한국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구축해왔던 경험을 살려 한국기업들의 경영 합리화 및 효율화 요구에 대응하면서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SAP이나 오라클이 본사에서 한국화 프로그램 지원팀을 만들어 한국실정에 맞는 모듈을 제공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 SSA, 바안 등의 업체가 내년 상반기중 자사 제품의 한국화를 가속화하고 고객들에 대한 기술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소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인 ERP기업만 하더라도 독일의 SAP, 네덜란드의 바안, 미국의 오라클, SSA, QAD, J, D, 에드워즈, 마캄, EMS 등이 망라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패키지 규모만 약 2천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내년도 국내시장에서 이들 업체의 판매전도 물고 물리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업체는 그동안 세계적 그룹사 중심의 시스템구축 경험을 토대로 시스템구축 타깃을 중견업체로까지 하향 확산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독자적인 서구적 환경과 한국적 환경을 접목, 이질성을 극복하면서 국내기업내 시스템 구축과정에서 드러났던 어려움을 하나둘 극복해가며 대부분의 대기업 사이트를 가망고객으로 확보해 놓고 단계적 공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룹계열의 SI업체들이 외국 ERP공급사들과 잇따라 제휴관계를 맺고 사이트의 확산을 모색하는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국내 ERP패키지 개발사들은 우리 나름대로의 환경에 적합한 ERP개발을 통해 외국 유명ERP 기반의 SW, 컨설팅 인력까지 의존하는 상황을 극복하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1, 2년새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ERP를 개발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해 사업활성화 및 저변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국하이네트, 한국기업전산원, 영림원, KTT경영컨설팅, 통합전산시스템, 삼성SDS, 더존컨설팅, 코픽스, DIT, ASC, 경일정보기술 등 대부분의 국내업체들은 기존의 MIS, 또는 MRP 구축을 위해 개발했던 제품에서 시작해 이를 ERP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어 내놓고 있다. 그러나 뒤늦게 세계시장을 석권한 외국의 거대 ERP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ERP개발사들의 최종적인 고객은 거의가 중견업체 내지 중소기업에 맞춰져 있다.
한국형 ERP를 부르짖는 이들 업체는 전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외국 유수의 ERP패키지 개발사에 대해 우리 기업현실에 맞는 제품개발 및 인터페이스 모듈 개발이라는 전략으로 틈새시장 공략과 독자적인 시장형성을 꾀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한국형 ERP 개발전략은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의 환경이 다르며 우리에게도 독자적인 기술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국형 ERP패키지 개발업체들은 상이한 한국적 기업환경중 대표적인 것으로 국내외 업계간에 보이는 상이한 상거래관행, 상이한 회계처리 제도, 취약한 국내기업들의 시스템 구축 및 개발여건 등을 꼽는다.
우선 상이한 상거래 관행 및 기업환경으로는 우리나라 기업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업무의 세분화가 미흡하고, 각 업무간 책임과 권한에 대한 규정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또 하도급 관계가 발달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형 제품개발사들은 또 ERP패키지의 특성상 회계가 생산정보와 경영정보관리 모듈을 제어한다는 점에 착안, 이 부분에 강점을 가진 모듈개발에 전력하면서 외국제품과의 경쟁력을 갖추려는 방향으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ERP개발사들은 한국의 회계처리 방식이 외국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하며 투명성이 부족하고 어음거래가 일반화해 있는 점 등을 들어 외국 ERP개발사들이 접근하기 힘들다고 파악한 부분을 반영해 개발한 제품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런 상이점을 내세워 차별화한 제품으로 외국기업과의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대기업 대상의 종합적인 ERP패키지 개발은 어렵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ERP의 모든 기능을 갖춘 종합 패키지를 개발하기에는 기술적, 시간적, 비용적인 측면에서 많은 투자가 요구되며, 무엇보다도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요청된다는 시각인 것이다.
국내 패키지 개발업체들은 이처럼 외국 ERP에 비해 기능에서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적 모듈을 부가하고 외국 ERP와의 상호 인터페이스가 가능토록 하는 개발전략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최소한 외국 ERP를 도입하는 기업들의 부대서비스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