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 기술동향과 매출현황-부품산업 (상);반도체 부문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돌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반도체업계는 내년을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일단 전체적인 반도체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산시설이나 기술개발분야에 대한 투자가 성과를 보이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구조의 개편을 우리 업체들이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격적인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터져나온 IMF라는 악재가 이러한 국내 반도체업체의 장밋빛 청사진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한국의 반도체산업 전반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 우리 반도체업계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이른바 「반도체사이클」이라고 불리는 5년 주기설 내지 올림픽 주기설이 무너지며 끝간 데 없는 호황세를 누리던 반도체경기가 96년 한순간에 급반전된 것은 D램의 가격폭락 때문이었다.
이같은 가격급락의 영향은 올 상반기 국내 반도체3사 매출에도 여지없이 나타나 각사가 전년동기에 비해 30∼50% 정도 줄어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상반기가 끝나갈 무렵, 전체적인 반도체 시장경기가 회복국면으로 돌아서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3사의 마케팅 임원들 표정이 다소 밝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D램시장의 경기회복을 이끌 만한 가장 중요한 시장재료인 세계 PC시장의 상황이 낙관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세계 PC 수요는 상반기 실적부진으로 인해 당초 목표에는 약간 못미치지만 비교적 높은 15%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며 약 8천만여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하반기 수요의 대부분이 MMX칩을 채용한 고기능 제품이 될 것으로 보여 평균 메인메모리 용량은 34MB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따른 주력 제품의 변화도 우리나라 반도체업체로서는 나쁘지 않은 흐름으로 작용했다. 16MD램의 경우 하반기 들어 고속 싱크로너스제품이 EDO제품을 누르고 주력 제품으로 떠오른 것과 함께 PC의 고기능화를 주도하는 칩세트들의 잇따른 출시가 싱크로너스제품의 수요를 본격적으로 촉발시켜 16MD램 시장에서 이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반기에는 20%에 머물렀으나 하반기에는 50% 수준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3사의 16M 생산 주력 제품을 빠르게 세대교체시키는 방향으로 시장전략의 전환을 도모한 것도 97년 하반기 이후의 시장구도를 의식한 것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16MD램 생산량의 20%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싱크로너스 제품의 비중을 10월말부터는 50% 수준으로 높였으며 LG반도체와 현대전자도 현재 각각 15%와 20% 수준인 싱크로너스 제품의 생산비중을 7월까지 30%수준으로 올리고 연말까지는 모두 5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상반기말 월 6백만∼7백만개 수준에 그쳤던 16MD램 싱크로너스 제품의 국내 생산은 이같은 반도체3사의 확대노력에 힘입어 연말 들어 2천만개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 EDO 제품을 누르고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0월께 국내 반도체3사는 또 한번의 승부수를 준비했다. 16MD램에서 64MD램으로의 빠른 세대교체 전략이다.
64MD램이 4, 4분기를 기점으로 미국시장에서는 일부 상위 PC기종의 메인메모리로 채용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가격 기준으로 12월께 16M와 64M 제품의 비중이 대동소이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64MD램 시장의 조기형성은 국내 반도체3사에는 16MD램의 가격하락을 막는 동시에 수익성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호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3사는 물론 NEC, 미쓰비시, 히타치 등 일본업체들이 시장선점을 위한 생산능력 조기확충 및 수율제고 경쟁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올 연말까지 기흥공장에 월 6백만개 이상의 64MD램 생산능력을 갖추는 한편 미주 오스틴공장에서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정도 빠른 올 연말부터 월 1백만개씩 양산할 계획이다. 또 0.3미크론 이하의 3세대 기술을 적용해 경쟁사보다 넷다이 수를 크게 늘려나가고 범용(1백㎒)제품보다 고속화한 1백50㎒ 제품을 본격적으로 양산해 제품 차별화에 나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64MD램에서 빠른 약진을 보이고 있는 LG반도체는 현재 월 80만개 정도인 생산능력을 연말까지 월 3백만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현대도 이천공장의 생산능력을 1백만개 수준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국내의 반도체업계의 계획은 IMF사태에도 불구하고 98년이나 99년 초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내년 이후에도 현재의 16M 및 64M 생산능력으로 충분히 시장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2백56M에 대한 시설투자와 3백㎜ 웨이퍼 관련 시설투자 등 대형 투자요인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기업의 신용도가 하루하루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재원의 60∼70% 가량을 충당해야 하는 외자도입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후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오늘의 호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의 이같은 고민은 고스란히 반도체장비나 재료업계의 주름살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국내 반도체 장비시장은 D램경기의 침체와 장비가격 폭락 등으로 지난해 47억달러 규모보다 줄어든 42억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생산부문 또한 4억8천만달러 정도로 지난해의 5억9천만달러 수준보다 상당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동안 후공정장비 위주로 진행돼온 국내 반도체 장비시장에 올해 들어 에처, CVD, 웨트스테이션 등과 같은 각종 전공정 반도체장비의 국내 개발 및 생산도 활기를 띠기 시작해 주목된다. 최근 국내 업체에 의해 개발된 전공정장비가 소자업체의 양산라인에 본격적으로 채택되는 등 그 국산 대체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 올해 국내 반도체 장비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전체 반도체 장비수요의 55%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마땅한 국산 제품이 없어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전공정장비의 국산 대체도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전망이다.
올해 국내 반도체 재료시장은 약 23억5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수입은 지난해 6억9천만달러어치를 공급한 일본이 올해 무려 1억5천만달러 이상 늘어난 8억4천5백만달러를 공급, 전체 수입물량(12억7천3백만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보다 오히려 6% 포인트나 늘어난 6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각각 1억4백만달러와 1억달러어치를 공급, 지난해보다 5∼4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8인치 웨이퍼, 포토마스크, 리드프레임, 케미컬 등의 분야에서 까다로운 공정에 사용되는 제품들의 대부분을 여전히 일본 재료업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올해 국내 반도체 재료 생산은 10억7천7백만달러로 전체 수요(23억5천만달러)의 46%를 차지해 지난해보다 자급률은 3%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산화된 것의 대부분이 아직도 범용제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는 여전한 고질병을 남아 있다. 이는 64MD램 이상급 제품으로 시장이 이전되면서 두드러지는 재료무기화 추세에 대응해 국내 업계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최승철, 주상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