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있다 (35·끝);쎄라텍

보통 벤처기업에 대한 정의는 모험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대별할 수 있지만 외형적으로는 「젊은 사업가」와 「정보통신 분야」라는 두가지 요소를 기본적으로 까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칩부품 전문업체인 (주)쎄라텍은 이 두가지 요소와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아주 이색적인 벤처기업이다.

세라믹스(Ceramics)와 기술(Technology)의 머릿글자를 따서 「쎄라텍」으로 이름지은 이 회사의 경영자는 고령(?)의 오세종사장(58세)이고, 주력 사업분야도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정보통신이 아니라 대표적인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칩세라믹부품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칩부품부문에서 만큼은 숱한 위기를 넘기며 현재 그 누구도 부럽지않은 탄탄한 기술력과 대외적인 지명도를 확보한 대표적인 벤처형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제철업계서 산업폐기물 취급받던 산화철을 주 원료로 깨알만한 칩세라믹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이 회사의 주력 아이템은 현재 칩비드와 칩인덕터라는 회로부품. 이들 제품은 전자회로를 구성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인덕터(L), 저항(R), 컨덴서(C)를 단독 또는 조합해서 회로단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차단하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89년 9월 설립돼 94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선 신생 기업이지만 이 회사는 현재 칩비드, 칩인덕터 등 초소형 전자, 컴퓨터, 통신기기에 주로 채용되는 노이즈 대책용 칩세라믹부품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무라타, TDK, 다이오유덴(태양유전) 등 부품왕국 일본의 세계적인 칩부품업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수준까지 올라있다.

현재 이 회사의 칩비드(칩인덕터 포함) 생산능력은 월 1억5천만개이며 올해는 평균 월 6천여만개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물론 세계 양대 칩부품메이커인 무라타와 TDK에 비해서는 생산량이 10분의 1에 불과하고 제품구조 면에서 비교할 단계가 아닌 것이 사실. 또 대기업인 삼성전기가 월 10억개 가량의 C소자(MLCC)를 생산하는 것에 비해서도 양적으로는 보잘것 없는 수준이라고 낮게 평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초 및 제조기술이 워낙 까다로워 국내는 커녕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경쟁업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무라타, TDK의 아성이 막강한데다 특히 단순 C소자가 아닌 노이즈대책용 칩부품을 주력 양산한다는 점에서 쎄라텍의 평가는 달라진다. 이 회사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봐도 세계적인 칩세라믹부품업체로 평가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91년 국내 최초로 1백마이크로패럿대의 고용량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94년 칩페라이트인덕터, 95년 칩세라믹인덕터, 고전압 MLCC, 96년 칩LC필터, 칩배리스터, 칩EMI(전자파장해)필터, 97년 세라믹멀티칩모듈(MCMC)에 이르기 까지 이 회사가 개발한 칩부품은 대부분 국내 최초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특히 최근에 개발, 상용화를 추진중인 극미세 용량의 칩서지업소버는 세계 최초다.

이에따라 이미 칩비드 분야에서는 무라타, TDK에 이어 세계적인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하며 매출면에서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92년 1억5천만원의 첫 매출을 올린이래 이 회사는 93년 7억5천만원, 94년 35억원, 95년 75억원, 96년 1백5억원, 올해 1백50억(추정)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매출뿐아니라 순이익면에서도 95년 흑자로 전환해 96년에 매출액 대비 19%의 순이익을 올렸으며 올해까지 3년연속 흑자실현이 확실시되고 있다.

매출 1백억 남짓한 평범한 중소 부품업체로 치부하기엔 일단 주요 거래선의 명단부터 화려하기 짝이없다. 일본판매대리점 역할을 맡고 있는 히타치금속을 비롯, 마쓰시타, 소니, AT&T, 휴렛팩커드, 모토롤러, TI, 애플 등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 등의 내로라하는 세계 80여 정보통신기기업체들이 이 회사의 주 고객들이다. 이에따라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오히려 해외서 더 잘 알려진 몇 안되는 국내 중소 부품업체중 하나다.

전체 매출 중 로컬수출을 포함한 수출 비중은 무려 90%를 웃돌고 있으며 직수출비중도 전체 매출의 약 80%선에 육박한다. 더구나 직수출중 절반가량은 적지 일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매출의 대부분을 엔 또는 달러화로 거둬들이는 덕분에 이 회사는 최근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엄청난 환차익을 누리고 있다. 이에따라 매출도 매년 두 배 이상 껑충 뛰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한지 4년만인 올해엔 1백50억원의 매출달성이 유력할 정도다.

외형뿐만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이 회사의 기술력은 현재 세계 칩부품업계 「톱5」에 들만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기초 기술인 세라믹조성에서부터 컴파운드, 그린쉬트, 소결, 적층, 인쇄, 측정 등 모든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핵심 소재를 제외한 대부분을 자체 조달하고 있는 상태다. 대략 주요 공정만 20여개를 거치는 세라믹부품업체들이 대부분 반제품을 도입, 후공정을 거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특성이 다른 이질의 재료를 낮은 온도에서 동시에 소결시키는 저온소결기술(LTC)은 이 회사가 자랑하는 전매 특허다. 융점이 다른 두 물질을 같은 온도로 구워 같은 특성이 나오게 하는 이 기술은 세라믹소결기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쎄라텍은 이미 이 기술을 활용,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의뢰한 MCMC용 서브가판개발에 성공했다.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의 유력 플렛폼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MCMC의 핵심기판 개발에는 이 LTC기술 뿐 아니라 회로폭 1백미크론의 미세회로가공기술과 정밀 적층기술의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세종 사장은 『MCMC기판을 개발한 것 만으로도 우리 회사의 적층기술, 미세회로가공기술, 소결기술이 어느 수준인지가 대외적으로 자연스럽게 평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쎄라텍이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첨단기술을 요하는 칩부품 분야에서 국내를 대표하며 세계적인 업체로 발돋움한 데는 창업주인 오세종 사장의 기술을 중시하는 강력한 신념이 깊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오사장은 창업후 꼬박 4년간을 투자에만 몰두했으며, 95년 손익분기점을 넘은 뒤 연간 매출이 1백억이 넘은 현재까지도 이익금의 대부분을 재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더욱이 1백60명의 전체 종업원 중 20%가 넘는 36명이 현재 연구개발(R&D)에 종사할 정도로 개발에 대한 오사장의 투자는 남다르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쎄라텍은 기존 칩비드, 칩인덕터의 중심의 사업구조를 그동안 개발해놓은 칩LC필터, 챕배리스터, 칩서지옵서버, MCMC기판, 마이크로웨이브기판 등 칩세라믹부품 전반으로 대거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칩비드 중심의 기존 페라이트사업부와 장차 전략적으로 육성할 세라믹사업부를 분리해 제 2공장을 설립, 내년부터는 순차적으로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지금 수준은 세계적인 종합 칩세라믹 전문업체로 가기위한 시작단계에 불과합니다.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꿴 셈이지요. 제품구색이나 여러면에서 무라타나 TDK에 비하면 보잘 것 없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60을 바라보는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불구, 오세종사장의 벤처기업가적 혈기와 마인드는 20~30대 젊은 사람들 못지않다.<이중배 기자>

[인터뷰] 쎄라텍 오세종 사장

『국산 부품이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국내 세트업체들의 고질적인 편견 탓에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것이 품질이나 기술력은 물론이고 지명도를 높이는 데 큰 보탬이 됐습니다』

창업 이후 93년까지 4년간 이렇다할 매출실적도 하나도 없이 투자만 계속할 때의 마음 고생이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하는 오세종 사장(58세)은 초창기의 쓴 시련들이 오히려 훗날 단 약이 됐다고 강조한다.

삼화콘덴서, 삼화전자, 삼화전기 등 국내 굴지의 콘덴서 업체인 삼화콘덴서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친 후 89년 쎄라텍을 창업한 오세종사장은 각고의 노력 끝에 90년 국내 최초로 전전자교환기(TDX)용 대용량 MLCC를 개발했으나 단 한개도 팔리지 않아 첫 번째 큰 좌절을 겪었다. 너무 기술적으로 앞서가다가 수요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다행히 이때 MLCC에 앞서 개발했던 칩비드가 91년 가을 한국전자부품전에서 통산부장관상을 받음으로써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겁도 없이 우선 일본시장을 노크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까다로운 일본업체들의 스펙(사양)을 맞추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판매는 고사하고 사전품질시험과 업체승인에만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어렵사리 1차 관문은 통과해서 일본 수출길이 막 열리려던 순간 쎄라텍의 일본행에 또 한차례의 위기가 닥쳐왔다. 일본 JVC사에 수출한 칩비드가 필드에서 불량이 생겨 클레임을 맞은 것. 오사장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 대해 『예상밖의 클레임에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 로서는 어떻게해야 할지 앞길이 캄캄했습니다. 금방이라도 회사 문을 닫아야할 것 같았지요』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비온뒤에 땅이 굳듯이 JVC클레임 사건은 수출, 특히 일본과의 거래에 있어 품질과 신뢰성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해줬다. 이때부터 쎄라텍은 기술개발과 함께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제품의 신뢰성이 높아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해 미국 등에서 바이어들의 주문이 잇따랐다. 오사장은 『올해 약 6억개의 부품이 출하되었으나 필드불량률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제로PPM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쎄라텍의 칩부품에 대한 품질, 신뢰성, 지명도가 해외에 알려지자 국내서도 주문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오사장은 『이제 세계적인 업체들도 어느정도 믿고 써주기 때문에 국내서도 판매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위해 지난 10월 한국전자전에 출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제 수출도 중요하지만 칩부품의 국산대체를 위해 내수시장공략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품질입니다. 요즘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국산품 애용」을 아무리 소리높여 외쳐봐야 소용없어요. 이러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모험가적인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일년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는 오세종사장은 과감한 R&D 투자와 남들이 하지 못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게 국제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이중배 기자>

<쎄라텍이 걸어온 길>

89년 9월 : (주)쎄라텍 법인설립

90년 10월 : 칩 페라이트비드 개발

91년 5월 : 대용량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개발, 91년 전자부품전 통산부장관상 수상

91년 10월 :제22회 한국전자전 통산부장관상 수상(칩비드 및 대용량 MLCC)

94년 10월 :칩 페라이트인덕터 개발

95년 2월 :칩 세라믹인더터 개발

95년 11월 :고전압 MLCC 개발

96년 5월 :군포제2공장(세라믹부품 전용 생산기지)설립

96년 6월 :칩LC필터 개발

96년 7월 :칩배리스터 개발

96년 8월 :칩 세라믹EMI필터 개발

97년 5월 :세라믹 멀티칩 모듈(MCMC)개발

97년 4월 :과학의 날 철탑산업훈장 수상

97년 6월 :칩페라이트인덕터에 대한 장영실상 수상(과기처장관)

97년 9월 :DNV로부터 ISO 9002인증 획득

97년 12월 :수출의 날에서 1천만불탑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