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7 전자산업 총결산 (11)

부문별 기술동향과 매출현황-가전산업 (상);AV부문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역신장을 기록했던 국내 가전시장은 국가경제 전반에 위기가 닥치면서 올해도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한해를 마감해야 할 형편이다.

TV, VCR, 오디오 등 AV부문 역시 대내적으로는 외산제품의 내수잠식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고 수출 역시 전세계적인 수요 위축과 높아진 수출 장벽으로 인해 안팎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한해였다.

또 침체수렁에 빠진 가전시장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플레이어와 디지털 캠코더 등 디지털 제품들 역시 극도로 위축된 구매심리를 자극하지 못한 채 시장선점에 나선 업체들을 딜레마에 빠트렸다. 한마디로 올해 AV부문은 내외외환에 시달리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국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지난해 2백20여만대로 마감됐던 TV 내수시장은 올해에는 전년보다 2∼3%가량 위축된 2백15만여대 선에서 마감될 전망이다. 장기화된 불황속에서 그나마 TV시장이 소폭으로 위축된 것은 29인치제품의 판매비중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확실한 주력제품으로 자리잡고 교단선진화, 위성과외방송 등 교육용 특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제품도 염가형의 판매비중이 급속히 확대되고 교육용 특수 역시 업체간 과열 입찰경쟁으로 인해 가전업체들의 채산성은 작년보다 악화됐다.

지난해 총 21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전년보다 16%의 신장세를 기록했던 TV수출은 올들어 큰 폭의 역신장세로 반전되었다. 10월말현재 TV수출실적은 12억6백만여달러로 작년같은기간보다 무려 32%가 줄었다. 이처럼 TV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은 수출선 불안정, 각국이 수입규제를 강화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특히 그동안 TV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對러시아 크게 줄어든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올해 TV와 관련해 발생했던 중요한 사건은 염가형 소니 TV의 등장과 우리 정부가 미국정부를 WTO에 제소한 일이다.

1/4분기들어 국산 동급제품보다 30∼50%%가량 저렴하게 공급되기 시작한 염가형 소니TV는 전자업계 뿐만아니라 외산제품의 내수잠식을 우려하는 여론을 타고 국가적인 이슈로 까지 부각되었다. 염가형 멕시코, 미국에서 생산된 소니TV는 국산보다 품질이 열악할 뿐만아니라 안전성, AS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2분기 이후로 기세가 꺽였으나 아직도 국내 소비자들이일본 브랜드를 맹목적으로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국내의 수입품 통관 및 전기용품 형식승인제도의 맹점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또 염가형 소니TV의 출현은 국내 업체들로 하여금 대응모델 공급을 자극해 국내 TV시장에 TV가격파괴를 유발하고 국내 가전업체들의 채산성을 약화시킨 한가지 원인이 되었다.

3분기들어 한국정부는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미국정부를 WTO에 제소함으로써 그동안 각종 통상현안과 관련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온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제소한 근거는 지난 85년부터 91년까지 삼성전자가 미국에 수출한 TV가 미소덤핑판정(덤핑률 0.5%)을 받았으며 91년이후부터는 직수출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가 한국산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한국산 TV에 대한 반덤핑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태국, 멕시코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업체의 TV에 대해 우회덤핑혐의를 씌우는 등 한국업체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TV와 함께 국내 가전업계의 영상기기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VCR 역시 국내, 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VCR는 내수가 작년보다 10%가량 줄어 올 연말 간신히 90만대를 넘는데 만족해야할 형편이며 수출실적은 10월말현재 작년보다 39.6%가 줄어든 11억9천여만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VCR 수출실적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중국 및 동남아산 제품의 공세로 해외에서 국산제품의 입지가 좁아진데다 올들어서 해외로 생산공장이 대거 이전됐기 때문이다.

DVD플레이어를 위시한 디지털 가전제품과 인터넷 TV로 대변되는 정보가전 제품은 가전업체들의 요란한 홍보활동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소비자들로 부터 외면당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DVD플레이를 출시하면서 막을 올린 디지털 가전시장은 올들어 LG전자가 DVD플레이어를 내놓으면서 가열되는 듯 했으나 전용타이틀이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과 녹화가 되지않는 단점으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는 전시품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까지 출시된 DVD 전용타이틀은 10여종.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3백∼4백종의 타이틀이 출시된 점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 DVD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팔릴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기까지는 최소한 2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디지털 캠코더 역시 방송용 수준의 화질과 다양한 부가기능은 마니아들이나 영상기기 전문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으나 한단계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마져 갖춘 일제 밀반입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기대했던 것 많큼 수요를 확대하지는 못했다.

인터넷TV 역시 대우전자에 이어 삼성전자, LG전자가 잇따라 출시하면서 TV가 양방향 정보단말기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으나 수십년 동안 누적되온 TV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데다 가격저항에 부딪혀 각사는 기술력을 과시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DVD플레이어, 인터넷 TV 등은 국내업체들이 선진업체들과 거의 동시에 상품화하고 해외시장 선점에 나섬으로써 국내업체들이 21세기 가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특히 내년부터 지상파 디지털방송이 시작되는 미국을 겨냥해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국내의 주요가전업체들이 핵심칩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상품화 작업에 착수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 5천1백억원 가량의 내수시장을 형성했던 오디오 시장 역시 올해엔 이보다 10% 가량 줄어든 4천5백억원에 머무를 전망이다.

올해 오디오 업계는 연초 롯데전자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해 사업이 크게 위축됐으며 한국샤프가 내수용 제품생산을 중단한데 이어 아남전자가 중저가 오디오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해 제품생산에 공백이 발생했으며 특히 11월 초엔 국내 오디오 업계를 선도했던 해태전자가 그룹의 부도로 사업에 차질을 빚으며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오디오부문을 새한그룹에 매각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LG전자 역시 평택 멀티미디어본부로 이전하면서 감량경영에 들어가는 등 대다수 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카오디오 업계에는 92년부터 지난 8월까지 5년간 유럽연합(EU)에 수출한 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낸데 이어 EU가 또다시 차량용 CDP 부품 등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덤핑 혐의가 밝혀질 경우 다시 한번 반덤핑 관세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내 카오디오 업체들에 대한 EU의 반덤핑 부과로 현재 대다수 업체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사업을 전환한 상태이며 국내 업체들의 카오디오 수출액 역시 지난해 7천8백만달러에서 올해 9월 현재 3천7백만달러로 급감추세를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97년 한해의 국내 AV산업은 여러모로 내우외환이 겹친 가운데 다음세기로 넘어가기 위해 총체적인 진통을 겪었던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유형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