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7 전자산업 총결산 (12)

부문별 기술동향과 매출현황-가전업계 (하);백색.소형가전

가전업계는 올해 내수시장에서 불황에 직면하자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던 한해였다.

90년대 초 AV제품이 그랬던 것처럼 백색가전제품의 해외시장 공략이 올들어 본격화했다. 이를 위해 가전업체들은 가전제품의 해외생산공장을 끊임없이 확충했으며, 수출을 확대하고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제품개발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가전사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달라진 시장환경에 맞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그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올해 가전산업의 두드러진 특징인 것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침체의 늪에 빠져든 국내 가전시장은 올들어 2, 4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다시 하반기 들어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냉장고시장은 업체마다 신제품을 출시한 1, 4분기 중 판매가 크게 부진했는데 여름철 들어 주력상품인 5백ℓ급에 염가형 모델이 투입되면서 수요가 되살아나 1, 4분기의 부진을 상당부분 만회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하반기 들어 다시 판매가 침체돼 연말까지의 실적은 지난해보다 4만여대 줄어든 1백85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시장규모를 금액으로 보면 지난해 수준인 7천5백억원을 형성, 냉장고 수요가 4백ℓ급 이상의 고가 대형제품에 집중됐다.

세탁기시장은 올해 수요가 지난해와 비슷한 1백25만대선이 기대됐는데 혼수철이 겹친 3, 4분기 성수기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11월말 현재 1백12만대에 머물렀다. 12월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아 세탁기 내수시장은 지난해보다 4% 정도 감소한 1백20만대에 그칠 전망이다.

전자레인지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AV제품 분야의 VCR, 오디오와 마찬가지로 가장 극심한 불황에 직면했다. 11월말 현재 전자레인지시장은 78만대 수준을 기록했는데 올 연말까지 85만대를 겨우 달성해 지난해보다 7%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에어컨시장은 올해 국내에서만 1백36만대, 금액으로는 1조7천억원의 시장규모를 형성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 연속 가전제품 1위 품목의 자리를 지키면서 침체에 빠진 국내 가전시장에 활력소 구실을 했다. 에어컨은 특히 3년 연속 20% 이상 고성장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구당 보급률이 25%에 불과해 앞으로도 시장이 커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가전제품 수위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어컨이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주요 가전제품의 내수시장은 올해 사상 최대의 불황에 허덕인 셈이다.

대부분 중소 가전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내 소형가전산업은 올들어 사정이 매우 악화됐다. 가전 대기업들이 소형가전사업을 축소하면서 중소 가전업체들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공급받는 제품의 품목과 수를 대폭 줄였고 경기침체의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애초 기대됐던 1조2천억원 규모에도 미치질 못했다.

올해 외산 소형가전의 수입증가율은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커피메이커, 전기면도기, 다리미, 토스터, 헤어드라이어, 휴대형 청소기 등은 여전히 외산이 시장점유율 60∼70%를 차지하면서 중소 가전업체들의 목을 조였다.

전기보온밥솥은 소형가전시장 가운데 시장규모가 가장 큰데 97년 한해 약 2백70만대, 1천8백억원어치가 판매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해 올해 압력기술과 IH기술을 채용한 고급, 고가제품이 대거 출시돼 시장이 고급화하고 있다.

가정용 진공청소기시장은 가전3사의 집중적인 기술개발과 투자로 지난 93년 이후 연간 10% 이상 고속 성장했는데 올해 경기침체의 여파로 실판매보다 대기수요가 늘어나 성장세가 한풀 꺾여 1백만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그러나 수출은 삼성전자가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해 수출실적인 1억2천만달러보다 5천만달러 늘어난 1억7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전기다리미, 인버터스탠드 등 생활용품군은 올해 전체 소형가전시장의 6분의 1 규모를 형성했는데 앞으로 가전업체들의 신규 아이템 개발로 시장규모가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 헤어드라이어, 전기면도기 등 미용용품군은 유닉스전자, 성진전자 등 전문업체들이 「이온 헤어드라이어」 「LCD 장착 전기면도기」 등 외산에 대응할 고급 제품을 내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체 시장규모는 외산제품을 포함해도 1천억원에 못미칠 것으로 보인다.

마사지기 등 건강용품군은 선물용으로 판매량이 많아 꾸준히 확대돼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안마의자 등 일부 품목은 유닉스전자, 현대그린, 세인전자 등이 수출을 강화해 수출규모가 3천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선풍기, 히터류의 계절용품군은 가전3사와 신일산업, 한일전기 등이 날씨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생산량과 공급량을 조절해 나가고 있으나 에어컨 및 중앙난방이 보급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선풍기는 올해 날씨의 영향과 에어컨 보급의 확대로 96년보다 15% 가량 줄어든 3백10만대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난방용품은 중앙난방의 보급확대로 가정용 팬히터의 수요가 감소한 대신 업소나 사무실에서 로터리히터나 온풍기의 수요가 늘어났으며, 가습기는 계절용품에서 연간제품으로 바뀌면서 시장규모가 70만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소형가전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데 대응해 가전 대기업들은 올해 소형가전제품 가운데 매출이 부진한 일부 품목을 과감하게 단종시키는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중소 가전업체들은 전기밥솥, 헤어드라이어, 전기면도기 등 전문 아이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품력을 강화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신규 아이템 찾기에 사활을 걸었다.

올해 주요 가전제품과 소형가전제품의 내수가 침체된 것과 달리 수출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가전업체들은 전통적인 수출품목인 컬러TV와 VCR 등 AV제품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그 대안으로 백색가전제품의 수출을 확대한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업체인 일본업체들이 AV제품의 해외생산에 주력하면서 백색가전제품의 해외생산체제를 미처 갖추기도 전에 국내 가전업체들이 독립국가연합(CIS)을 비롯한 동구권, 중남미, 동남아 등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가전업체들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에어컨 등을 수출 주력상품으로 육성하는 세계화 전략을 앞다퉈 발표하면서 글로벌 생산기지의 구축을 선언한 것도 올들어서다.

가전업체들은 특히 최근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자 가격경쟁력 확보의 호기로 보고 가전제품의 수출물량 확대와 제품 고급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계획이 결코 쉽사리 성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올 한해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해 LG전자가 이탈리아 냉장고공장을 철수한 데 이어 올 초 삼성전자는 슬로바키아의 냉장고공장을 철수했다. 무계획한 해외투자의 허점이 일부 드러난 셈인데 이를 계기로 가전업체들은 저마다 해외 가전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국내외 가전시장에서 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각종 규제가 한층 강화된 한해였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가들은 올해 절전효과가 적거나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가전제품의 수입을 앞으로 금지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했으며 우리나라 정부도 에너지 효율등급이 낮은 가전제품의 유통과 제조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응해 국내 가전업체들은 저마다 전담 개발팀을 구성해 대체냉매를 채용한 냉장고와 에어컨의 개발에 들어갔는데 물이나 세제 없는 세탁기와 같이 새로운 개념의 가전제품의 개발도 모색됐다.

가전제품이 AV제품에 비해 덩치가 큰 특성상 물류부담은 여전히 수출확대와 대형화를 통한 고부가가치화의 걸림돌이다. 수출역사가 짧은 탓에 AV제품에 비해 낮은 브랜드 지명도와 열악한 디자인 경쟁력의 문제점도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전업체들은 올해 다각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데 주요 권역별로 가전물류기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으며 종합 가전생산단지를 비롯해 현지 생산기지도 대거 확충하기 시작했다.

해외 가전업체와의 제휴 움직임도 올해 두드러졌는데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LG전자는 미국 GE와의 초대형 냉장고 합작을 추진하기도 했다. 대우전자는 전자레인지를 시작으로 국내외 디자인을 통일시키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내수에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탈출구로 찾은 해외시장을 향해 뛰어가면서 97년을 마감했다.

<가전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