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남
79년 서울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졸업
81년 뉴욕주립대학 경영학 석사
81∼84년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89년 오클라호마 주립대 경영학 박사(경영정보 전공)
89∼94년 쌍용정보통신 컨설팅사업 총괄
94∼97년 동양 시스템하우스 신규사업 총괄
97년∼현재 가트너그룹 리서치담당 이사, RAS(Research Advisory Services)담당
최근 전사적 자원관리로 불리는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시스템 구축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ERP업체들이 국내업체와 제휴하거나 직접 진출을 통해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의 SAP, 네덜란드의 바안, 미국의 오러클, SSA, JD에드워즈, 마캄, QAD사 등에 이어 세계 4대 ERP업체 중 하나인 미국의 피플소프트사도 한국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I업체나 ERP업체들은 내년 ERP시장을 2천억원 규모로 예상할 정도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ERP는 한마디로 전산시스템을 기업취향에 맞게 개발하는 접근법에서 탈피, 기존 시스템에 맞게 조직을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기성복을 구입하는 것이 맞춤복보다 가격이 저렴하듯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고 또 기존 조직의 불합리한 업무처리 방식을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같은 장점 때문에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국내 기업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편승해 ERP하드웨어업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업체, SI업체들이 ERP와 데이터웨어하우징(DW;Datawarehousing)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활발한 마케팅,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시장이 이처럼 활발한 가장 큰 이유는 클라이언트/서버 붐 이후 뚜렷한 핫이슈가 없다는 점과, ERP/DW 구축분야는 시스템에 대한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에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매출신장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볼 때 ERP시스템 구축효과는 실제보다 다소 과장되고, 구축시의 어려움은 반대로 축소되어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ERP나 DW의 구축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소위 거품을 제거하고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ERP 구축시 컨설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주요 컨설팅업체 입장에서도 주요시장이 된다. 특히 패키지 도입가보다 수반되는 컨설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일부 컨설팅업체들은 ERP컨설팅을 핵심사업 분야로 추진하고 있다. 실제 ERP의 주요 성공요인 중의 하나가 컨설턴트의 역할인데 국내의 경우 아직 ERP역사가 짧아 유능한 컨설턴트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는 현재 주요 SI업체들이 컨설턴트 양성에 매진하고 있어 개선될 것으로 보이나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유능한 컨설턴트는 산업에 대한 충분한 지식 등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 많아 단기간에 양성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컨설턴트들은 연간매출 규모에 따라 구축대상 기업을 3계층으로 분류한다. 1계층 ERP업체의 경우 총구축비용을 수십억 대, 2계층 업체는 10억원 전후며 소위 국내형 패키지의 경우에는 2억원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컨설팅 비용은 패키지 비용의 2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설팅은 전문 컨설팅업체가 주도하고 있으나 일부 업체의 경우 실제 사용자들이 컨설팅작업을 주도하고 컨설턴트는 자문을 제공하는 형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급격한 시장개방이 예상되며 이에 따라 높은 실업률, 조세부담의 증가, 물가상승 등의 어려움이 최소한 2년 정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이에 상응한 국내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과거와는 달리 생존하기 위해 과감한 조직개편과 수익성이 없는 사업분야를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과거 기업들의 정보통신(IT) 관련 투자성향은 상대적으로 투자 타당성 검토가 미흡한 가운데 이뤄져 왔으나 향후 IT관련 투자는 효율성 측면에서 상당한 검토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국내 일부 재벌그룹에서는 그룹 전체의 IT투자의 효율성을 확인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또 개발인력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평가기준, 예컨대 1인당 월별 프로그램 개발 본수 등을 정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의뢰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큰 변화다. 이는 급격한 컴퓨팅 기술변화와 생존경쟁이 격화되면서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IT측면에서는 대부분의 요인들이 효율적인 운용을 강요하는 측면에서 압박요인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았던 IT인력의 임금상승 추세가 주춤하는 측면은 숨통을 트이게 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보여진다. 또 외부 SI시장의 침체와 모기업의 경영합리화 조치로 인한 그룹사 물량감소에 따라 SI서비스 제공업체의 규모감축과 수의 감소가 예상된다.
ERP구축시 주요 장애요인으로는 내부의 저항, 유능한 컨설턴트의 부족, 외국 컨설턴트 활용시 의사소통상의 어려움, 고가의 비용 등을 들 수 있다. 가장 큰 장애요인인 내부저항은 현상황을 고려할 때 급속도로 감소할 것으로 보여 ERP의 성공 가능성이 다소 높아질 것을 예상된다. 그러나 나머지 장애요인은 단시간에 크게 개선이 될 것으로 보이지 않고 특히 환율인상으로 구축비용은 전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측면에서는 ERP도입의 최적시기라고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조직 전체의 효율성 향상이 가능해 타당성이 높다. 다만 수많은 공급업자 중에서 자사에 적합한 솔루션을 선정하는 문제, 컨설턴트의 부족, 고가의 비용 등의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적합한 솔루션의 선정기준에 있어 최고 경영자와 최고정보책임자(CIO)의 ERP에 대한 인식 및 관점 차이가 있다. 최고 경영자들은 ERP를 도입하면 향후 대규모의 전산투자가 없고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정보시스템 관련 부서 입장에서도 자기 업종에 적합한 솔루션을 나름대로 철저히 분석, 1차 선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의 검토는 미흡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ERP 추진계획서에 수주개발 대 ERP도입의 향후 3년간의 투자비용 평가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자비용은 단순히 HW, SW비용뿐만 아니고 전산인력 인건비(신규채용 인력 포함), 향후 유지 보수비용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최고 경영자와 정보 시스템부의 시각차이는 특정 회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ERP투자 비용이 20억원이고 매출 이익률이 5%라고 가정하면, 매출 1천억원이 발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점이 주요 이슈가 될 수 있다. 향후 더욱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20억원 투자의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며, 따라서 거시, 미시적인 측면이 균형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만큼 초기부터 최고 경영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필요할 경우 외부 전문가를 통한 자문을 받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외부 전문가에게 5천만원의 용역비가 지불되더라도 1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면 기업에게는 이득이 되며, 외부 전문가의 활용으로 객관적인 의견을 수행하기 때문에 내부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ERP솔루션의 개략적인 선정기준은 각각의 기업에 따라 달라지고 또 필요시 평가항목을 추가할 수 있다. 솔루션 선정기준은 주요 세부항목별로 ERP업체 제품의 기능, 재정상태, 시장점유율 추세, 주요 국내외 실적, 국내외 컨설턴트 보유 현황, 제휴 컨설팅 업체, 장기 사업전략, 컨설팅 업체 및 프로젝트 관리자 평가, 주요 실적, 계약시 융통성, 컨설턴트 보유 현황, 수행업체의 주도적인 역할수용, ERP업체와의 제휴관계, 패키지 가격 대 컨설팅 비용과 비율, 운영체계, DBMS, 수행업체 전산인력 기술수준 등이 고려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ERP는 해외진출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기업(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장 및 현지법인을 연결시킬 필요성이 시급함) 기존에 개발한 정보 시스템이 많지 않은 기업 등에 적합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따라 당위성이 더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 추진방법도 전체 모듈을 다 도입하는 것보다 필요한 모듈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위험도를 최소화할 것으로 판단된다.
평가기준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ERP 솔루션업체의 능력 및 안정성이다. 대부분의 솔루션이 외국제품이기 때문에 과거에 제품도입후 공급회사가 도산하거나 타회사에 흡수합병되어 유지보수 문제를 경험한 사례가 많고 또 심한 경우에는 딴 제품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도 공급회사의 장기적인 전망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공급업체의 사업전략을 검토해 전략적 제휴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내 전문가 양성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대규모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이것을 수용하는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둘째 컨설팅업체로 실제 상주하면서 프로젝트를 주도할 프로젝트매니저(PM)의 자질문제이다. 프로젝트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가급적 계약서에 PM을 명시하고 동의 없이는 교체하지 못하도록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컨설팅업체가 복수의 ERP 솔루션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요 전략제품이 무엇인지는 파악이 돼야 한다. 정보시스템 전략 측면에서는 예를 들어 오러클DBMS를 표준으로 활용할 경우 오러클 솔루션이 바람직할 수 있으며, AS/400기종을 주서버로 채택할 경우 AS/400용 솔루션을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외에도 현재 전산인력의 기술력 및 기타 정보시스템 전략도 고려돼야 한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서 ERP도입의 당위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수많은 업체들이 다양한 솔루션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많아 유리한 조건을 제공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투자비용, 실패 가능성 등의 측면과 전산인력의 임금 증가율 퇴조 등에 기인한 인건비 부담의 감소 측면도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