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과 소프트웨어 분야로부터 불기 시작한 벤처바람은 올 한해 부품업계로까지 확산되면서 국내 전자산업의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구비한 벤처업체와 이 업체들에 자본을 공급하는 벤처캐피털의 잇따른 설립은 침체기로 접어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반도체가 국가기간산업으로 발전하면서 반도체 분야의 벤처기업들이 속속 설립됐으며 정보통신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통신부품분야의 벤처기업들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도체 장비업체로 출발한 미래산업은 올 상반기 전년 동기대비 78.8% 늘어난 2백77억원의 매출에 경상이익만도 60%이상 증가한 1백10억원에 달하는 등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의 표상이 됐다. 또 칩 설계회사인 C&S테크놀러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비디오폰칩을 개발, 그동안 시장을 선점해온 인텔과 같은 거대 반도체회사를 놀라게 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개발해온 제품이 본격 양산되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무려 10배이상 늘어난 1천억원대의 매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통신기기에 들어가는 MMIC 등 화합물 반도체를 생산하는 씨티아이반도체는 장외시장에 등록하면서 당시 코스닥 입찰 사상 최대 규모인 7백58대1의 높은 경쟁률과 매매개시 후 25일간 상한가 행진을 계속하는 진기록을 남긴 바 있다. 이 회사는 오는 99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화합물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반도체 전공정장비인 저압화학증착(LPCVD)장비를 개발한 주성엔지니어링, 무라타, TDK 등이 독점해온 칩인덕더와 비드를 선보이고 있는 쎄라텍, 액정표시장치(LCD)장비를 여러종 개발한 신도기연, 통신용 부품을 생산하는 KMW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내는 벤처기업들이 등장했다.
그동안 국내 전자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커다란 요인으로 핵심부품의 해외의존률이 높다는 것이 지적돼왔다. 이럴 경우 전자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은 물론 수익성부분도 한계가 있다는 것은 국내 전자산업의 역사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기형적 성장을 방지하기 위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부품업체들의 육성은 시대적인 요구라 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이같은 시대적인 요구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분야에 재투자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20% 이상을 투자해 기술 습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스톡옵션 등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대기업이 취하고 있지 않은 다양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주도권을 회복한 미국의 경우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자생적으로 발생, 새로운 기술분야로 뛰어들었고 이들의 성공이 대기업과의 연결고리를 마련, 미국의 전자산업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내년 국내 전자산업은 IMF의 영향으로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노동집약적인 부품산업은 동남아, 중국 등에 의해 경쟁력을 상실했다. 다행히도 정부는 올해 신기술 집약형 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 벤처기업의 금융과 인력수급 및 입지공급을 원활케 하는 조치를 마련해뒀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전자산업의 미래를 재는 잣대로 「벤처기업의 활기」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올해 드높았던 부품산업 분야의 벤처바람은 내년 IMF 파고를 타고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유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