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한국형 기술개발 시스템

禹東圭 동양기전 중앙연구소장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선행하면서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도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나 아직 선진국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형 기술개발 시스템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을 진일보시킬 수 있는 한국형 기술개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업의 핵심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개발이 추진돼야 한다. 기업의 역량에 근거를 두지 않거나 관계가 없는 신제품 개발 또는 신규사업은 단기적인 성공은 할 수 있지만 결국 핵심기술의 역량 향상면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경쟁적 우위요인이 무엇인지 생산기술, 공정기술, 정보관리능력, 기술개발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활용해야 한다. 단지 자금이 충분하기 때문에 사전준비 없이 시작해 얼마나 많은 기업이 실패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이 없으면 미래보장은 없다.

우리나라의 해외기술 의존도는 1980년대까지 지수 20%대의 높은 의존도를 보이다가 점차 하락, 94년도에는 11%대로 낮아지는 추세에 있으나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 비해 매우 높은 해외기술 의존도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술이 선진기술보다 하위수준이며 핵심기술의 해외의존이 높은 기초소재 및 중간재 부문의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여타의 제품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지속적으로 수출은 증가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대한 무역 역조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수출액은 높으나 핵심부품 또는 핵심기술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경쟁에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입한 부품으로 채워진 상품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미국의 GE는 미국산업의 리스트럭처링 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GE의 전략은 세계 1, 2위가 아닌 사업은 모두 포기한다는 것이었고 이 매각으로 얻은 이익으로 핵심사업을 강화해 성장사업을 양산했다. 결국 단기적인 이익을 내기에 급한 사업은 거품을 만들게 되고 극단적인 구조조정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또한 1990년대 초 가전산업의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일본과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어온 우리나라는 일본을 답습하려는 성향이 있으나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미국산업의 구조조정 모델을 따른다는 것도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와의 국민정서와 환경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최선의 모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한국형인가를 적극 비교검토해야 한다.

최근들어 한국 산업동향을 살펴볼 때 한국기업의 기술축적이 기술도입에 의한 해외의존형 내지 완전모방형으로 진행되다가 창조적 모방형으로 변화돼 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자립기반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으나 향후 문제는 기술도입을 증대시키면서 자체 연구개발을 어떤 과정으로 추진해 기술력을 축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기업에 맞는 기술개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며 시장개방이 가속될수록 양보다는 질적인 방법으로 구조조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따라서 시장에서 1, 2등을 하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 일시적인 이익이 있더라도 비전략사업으로 선정되면 과감히 포기하고 기술축적이 가능한 핵심사업으로 분산된 힘을 모아야 한다. 고도의 기술축적이야말로 세계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