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밑은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도 우환은 가시지 않는다. 외환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한번 치솟은 환율은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제 자리를 잊은 듯하다. 기업체들의 도산은 여전하고 그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은 데는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이제 주위에서 실직한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아주 쉬운 일이 돼 버렸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했건만 그 흔했던 캐롤조차 듣기 어렵다. 이맘때 쯤이면 사람으로 넘쳐났던 거리가 한산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사람들도 잔뜩 움츠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장기적인 불황이 사람들의 희망을 모두 앗아간 듯하다.
「IMF체제」로 물가와 공과금, 세금 등이 인상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임금은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심리가 얼어붙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계가 결딴나는 줄 알면서도 돈을 펑펑 쓰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무분별한 소비를 억제하는 것은 언제나 미덕이다.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현재 우리로선 국가의 상지상책이다. 그래서 지금 나라 전체가 수입을 억제하고 소비를 줄이는 데 발벗고 나서고 있는 듯하다. 달러로 사오는 에너지나 각종 물자 사용을 줄여 외화를 절약하자는 뜻에서다. 그런데 모든게 그렇듯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소비가 줄면 내수가 위축돼 경기가 나빠진다. 경기회복은 내수 진작이 지름길이다. 그래서 국산품이나 비사치성 물품에 대한 건전한 소비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대조차도 무망에 가까와 졌다. 결국 돌파구는 수출 밖에 없는 듯하다.
제1의 수출 역군인 전자산업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질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업체들은 불행하게도 수출을 하면서 해외시장에서조차 과당경쟁만 할 줄 알았지 페어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가전이나 컴퓨터 업체에 이어 전광판업체들이 해외서 자기네들끼리 치고받는 모양이다. 업계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과당경쟁은 결국 공멸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업체들도 경쟁보다 협조가 더 높은 덕목이라는 것을 체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