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으로부터 케이블TV, 영화, 비디오, 음반,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전 영상산업이 달러화 폭등과 IMF 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경기침체가 지속돼온 데다 최근 들어서는 달러화 폭등과 IMF체제 하에서의 긴축기조 등으로 인해 국내 영산산업 관련업체들 역시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영상산업 전반이 지출을 대폭 줄이고 심지어는 인력 및 조직을 도려내는 등의 초긴축 경영체제로 전환, 「살아남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상산업계의 이같은 어려운 상황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생존」과 관련한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영상산업의 특성상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산업이 크게 위축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짧은 역사와 취약한 자본력, 기술력 등의 요인으로 외국 유명업체의 작품 매입에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국내 업체들의 고통이 한층 배가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국내 영상산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영상산업계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호경기에 영상산업에 뛰어든 재벌기업들이 단기간에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방편으로 흥행이 보장되는 외국의 영화나 비디오, 게임 등의 판권을 경쟁적으로 매입하며 값을 크게 올려놓았고, 이는 경기가 악화되고 환율마저 폭등한 지금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슬기롭게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때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거품을 빼는 과감한 노력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일부 교육용 타이틀 개발업체들이 외장 종이박스를 없앤 채 제품을 출시하는 등 CD롬 타이틀의 단가 낮추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작지만 좋은 「거품 제거」 사례라 할 것이다. 그동안 외장 종이박스의 비용이 실제 타이틀 제작에 투자되는 비용의 2배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산과의 「외모 경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종이박스를 제작해 온 업체들 가운데 이같은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긴축과 함께 국내 영상업체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수요창출이다.
이달 초 홍콩에서 열렸던 「MIP-ASIA97」 전시회에서 우리 지상파와 케이블 프로그램 공급업체들이 외국 방송사와 대거 수출계약을 맺은 것은 국내 업체들이 불황 속에서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중계유선방송이나 케이블TV업체들이 최근들어 케이블망을 활용한 양방향 인터넷 서비스 등 부가서비스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도 모두가 불황극복을 위한 새로운 수요 창출 노력으로 이해되고 있다.
IMF시대를 이겨나가기 위한 체질개혁은 민간기업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그동안 미비점으로 지적돼 온 제도적인 틀을 하루빨리 개선하고 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 걸림돌이라도 치워주려는 전향적인 자세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케이블망을 활용한 부가서비스 등 신규서비스가 관련 법령이나 법규 미비로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후진국형 민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아야 한다.
영국이 지난 수십 년간의 정체를 딛고 첨단산업을 유치, 육성하는데 성공한 배경에는 민간기업들의 자구노력은 물론 이들보다도 더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뛰어다닌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자세가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면 오히려 이를 진정한 생존경쟁력을 기르는 계기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