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7 전자산업 총결산 (13.끝)

부문별 기술동향과 매출현황-전자유통

최근 몰아닥친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전자 유통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부도소식과 부도설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으며 가전, 컴퓨터, 부품유통 할 것 없이 전 분야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국가경제 부도에 따른 자금경색이 직접적인 요인이라고는 하지만 전자 유통업체들이 이처럼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수년간 계속돼온 불황에 의한 기반약화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여유있는 자금운용은 이미 수년 전부터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97년 역시 이같은 기반 위에서 시작됐다.

어두운 시장상황은 전자 유통업계의 구조적인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저가격을 무기로 사세를 불려가던 신흥 유통업체들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또 자금력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통점의 도태도 잇따랐다.

가전제품 유통시장은 소형점의 위축과 대형 유통업체의 득세라는 양극화 형상이 심화됐다. 가전3사 유통점은 살아남기에 급급한 한해였다. 매출감소와 판매가격 붕괴,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문을 닫는 점포가 크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유통점 수가 올해 처음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체인화한 혼매점인 전자랜드, 하이마트를 운영하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비교적 안정된 기반을 다진 한해였다. 제품 수급량이 많아지면서 가격정책에 탄력성을 갖게 됐으며 이를 통한 시장지배력도 크게 높아졌다. 이들 업체는 각사가 20개 내외의 점포를 개설하는 등 전국적인 유통망 구축작업도 활발하게 벌였다.

가전사 전속 대리점 가운데 1백평 이상의 초대형점 출점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올해 10개 내외의 초대형점을 출점시켰다.

컴퓨터 유통시장의 한해는 험난하기만 했다. 올해 초부터 이어진 유통업계의 연쇄부도는 급기야 시장의 판도변화를 가져왔다. 어음결제와 덤핑물량 공세로 사업을 영위해온 중소형 부실 유통업체들이 쓰러져 현대전자, 대우통신, 두고그룹 등 대기업들이 지분투자나 공동 투자형식을 통해 공백을 메워갔다. 용산 등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립 PC업체들의 위상은 갈수록 축소돼갔다.

가격 측면에서는 펜티엄Ⅱ 2백33㎒급에 DVD를 장착한 최신 사양이 출시되면서도 평소 PC의 최고급 가격으로 여겨지는 3백50만원대를 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주력 기종이었던 1백66㎒ 및 1백50㎒급 펜티엄PC는 가격이 2백50만원대에서 1백50만원 안팎으로 크게 하락했다.

올해 컴퓨터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인상이었다. 지난 95년 이후 매년 분기별로 10% 이상 하락행진을 지속해온 컴퓨터가격이 최근 IMF파동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20% 가량 급상승했다.

노트북PC 시장은 제품 슬림화와 가격하락에 힘입어 수요가 분기별로 10% 가량 늘어나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자 대기업 PC업체는 물론 전자상가 업체들도 앞다퉈 전문매장을 설립하는 붐이 일었다.

올해 이동통신기기 유통시장의 특징은 시티폰, PCS 상용화로 유통 단말기 종류가 다양화하고 새로운 서비스 사업자의 등장으로 이동통신 대리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또 지난해까지 팽창일로에 있던 무선호출기 시장과 올해 초 서비스 상용화 초기부터 급성장 추세를 보였던 시티폰 단말기 시장이 휴대전화기와 PCS 단말기 시장에 밀리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였다. 당초 대대적인 유통시장 변혁의 주인공으로 여겨졌던 PCS는 단말기 부족과 서비스의 안정화 지연으로 다소 주춤하고 있는 사이 셀룰러폰의 판매량이 예상외로 늘어났다.

이동통신 대리점은 올해 초 시티폰서비스의 상용화로 5백개에서 6백개의 대리점이 추가로 생겨났으며 지난 10월 PCS 상용화로 1천5백여개 이상의 대리점이 새로 생겨났다. 이같은 대리점 급증은 가입자 유치를 위한 과열경쟁으로 이어져 최근에는 경쟁력이 없는 업체들의 전업이나 폐업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나의 이동통신 서비스업체와 계약을 맺는 전속 대리점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나 다양한 서비스업체별로 별도 계약을 맺는 멀티 전속 대리점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올해 이동통신시장의 변화 중 하나였다.

단말기 유통경로에는 그동안 전속 대리점만을 통해 공급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티존코리아, 세진컴퓨터랜드, 전자랜드 등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경로가 생겨나기도 했다.

부품 유통시장의 침체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심각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연무 속에서 수많은 업체가 도산했다. 12월 말 현재 부품 유통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업체 숫자와 거래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11월 말과 12월 들어서는 대형 컴퓨터업체와 부품 유통업체가 5개 이상 쓰러졌다. 다가올 무더기 도산에 대한 예고라는 점에서 업계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올 한해 정상경영을 영위한 부품 유통업체는 거의 없었다. 11월까지 흑자경영을 끌어온 업체들도 환율폭등으로 인해 적자로 반전됐다. 12월 들어서면서 거래가 거의 중단상태로 변하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이 실시된 이후 여신거래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현금거래가 아닌 어음거래는 모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반도체가격은 메모리의 경우 국제 현물시장의 가격하락으로 인해 수출물량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 때문에 부품 유통업체들은 비메모리쪽으로 치중하면서 반도체 디자인기술이 발전하는 소득을 가져오기도 했다.

전반적인 불황은 전자전문 상가의 한해를 곤혹스럽게 했다. 지난 3월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개장으로 전자상권의 다핵화시대가 포문을 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기존 상가의 틀을 깨고 백화점식 수직상가로 쇼핑의 편의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1년간의 집객상황과 전체 매출을 따져볼 때 성공작이라고 평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국제전자센터에 이어 부품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구로동 중앙유통상가가 6월 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문상가는 더욱 다양해졌다.

백화점업계는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감소와 금리, 환율폭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형 백화점도 매출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제살깎기식 과당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3대 백화점은 지난 95년 백화점협회의 중재로 무이자 할부판매 기간을 3개월 이하로 정했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이 지난 10월 6개월 무이자 할부판매에 나섰고 이에 뒤질세라 현대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들도 6개월 무이자 할부판매제를 도입, 매출확대를 통한 자사 손익 맞추기에 급급했다. 반면 창고형 할인점은 얼어붙은 소비심리와 상관없이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다.

외산가전 유통업체들은 상반기까지만 해도 쏠쏠한 장사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속되고 있는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인상과 국민의 외산구매 자제 움직임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연초 8백40원대이던 환율이 2배 이상 올라가자 백색가전, 두산상사, 미원통상, 한경테크노라이프, 동양매직, 한샘 등 외산가전 수입업체들은 수입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이들 회사의 작년 매출은 재작년에 비해 소폭 신장했으나 올해엔 역신장폭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외산 가전업체의 절반 이상이 사업 자체를 중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케이블TV 홈쇼핑채널은 올 한해 불황을 모르고 성장가도를 달렸다. 매출도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1천억원대에 이르는 등 「불황 속의 호황」으로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TV홈쇼핑이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장을 구가한 데는 사업 초기인데다 가격파괴와 함께 택배서비스 등 날로 높아지는 고객의 서비스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