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 소재 재고가 오히려 「효자」]

최근 외환위기에 따른 환율인상으로 종합상사를 비롯, 대부분의 수입업체들이 엄청난 환차손과 매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IMF시대에 국내 부품 및 소재 업체들이 재고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 화제다.

외환위기에서 촉발된 현 금융권의 자금경색으로 운전자금과 원자재 구매비용 조달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부품 및 소재 제조업계로선 생산만 해놓고 판매가 되지 않은 재고가 많을수록 자금부담이 덜해 IMF한파 속에서 상대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이 급등하기 전인 지난 11월 중순 이전에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 재고를 충분히 갖고 있는 업체들은 환율인상분을 공급가격에 전가할 경우 발생하는 적지 않은 환차익까지 기대돼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재고가 일거에 「효자」로 탈바꿈하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는 것.

여기에 환율이 불과 몇달새 2배 안팎까지 오르면서 수입 부품 및 소재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짐으로써 수요자인 국내 세트 및 부품 업체들이 자연히 구매처를 해외에서 국내로 적극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판매증가도 기대되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에 심각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업종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인쇄회로기판(PCB)용 페이퍼 페놀원판 업계. 두산전자, 코오롱전자, 신성기업 등 업계의 경쟁적인 설비증설로 그동안 수요대비 공급능력이 3배에 육박하는 심각한 공급과잉에 직면, 적잖은 재고분을 안고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고분은 또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크게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인상으로 한국산 세트, 부품, 소재 등 전자산업 전반의 국제 가격경쟁력 회복이 예상되는 데도 불구, 자금압박으로 제때에 생산을 못해 수혜를 받지 못하는 상당수 제조업체들과 달리 재고누적 업체들은 일시적이나마 수출증가에 따른 상당한 환차익이 기대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재고량이 많은 일부 업체들이 해당 수요업체에 납품을 거부하는 후유증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과잉 현상이 마치 일시적으로 수요과잉 상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재고가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업종은 일부 공급과잉업종 외에는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수 년 전부터 전자산업 전반의 단납기화가 가속화돼 부품업체나 소재업체들 대다수가 재고를 넉넉히 갖고 갈 여유가 없었던 데다 정상시기에는 재고상태 자체가 부실의 보증수표로 대별돼온 탓이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