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예상보다 빨리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CDP),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LDP)와 함께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 플레이어(DVDP)를 수입선다변화 품목에서 해제함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DVDP는 향후 디지털 가전시대를 이끌어갈 핵심품목임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이 형성되는 시점부터 국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앞선 일본제품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힘겨운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DVDP의 수입선다변화 해제 조치를 보는 국내 가전업체들의 반응은 크게 두갈래다. 이번 조치로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는 DVDP시장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소비자들의 일본제품에 대한 선호현상으로 초기단계에서부터 일본산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우선 국내 DVDP시장이 열리지 않은 직접적인 이유가 소프트웨어 부족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현재 일본에 등장한 3백여종의 DVD타이틀 중 일부만이라도 국내에 반입될 경우 이를 보기 위해 DVDP수요가 크게 확산되지 않겠느냐는 것.
삼성전자 상품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등장한 전용타이틀이 10여종에 불과한 국내 현실에서 일본 타이틀 공급은 국내 DVDP시장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DVDP는 전세계적으로 표준화한 규격에 따라 제조하기 때문에 일본산이라고 해서 국산제품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것이 없는데다 정상적으로 수입되면 각종 세금이 국산제품과 동일하게 부가되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일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업체들이 공동 판촉을 전개할 경우 국산제품이 제대로 보급되기도 전에 일본제품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더 높다. 이미 도시바, 소니, 파이어니어 등이 타임워너, 소니픽처 등 세계적인 영상소프트웨어업체들과 짝을 지어 미국시장을 장악했듯이 풍부한 타이틀을 번들로 제공하면서 국내시장을 공략할 경우 국내 시장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일본 브랜드와 기술에 대해 국내소비자들이 맹목적으로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 초 함량미달의 미국, 멕시코산 소니TV가 국내시장을 흔들어놓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 브랜드는 여전히 국내시장에서 가장 인기 높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도입단계에서 DVDP를 구입하는 계층이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고소득자임을 감안할 때 일본제품이 내수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내년부터 일본산 제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산제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마케팅 활동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DVDP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타이틀 보급이 지지부진한 점을 감안할 때 수입선다변화 해제 조치의 파장은 내년 하반기에나 확인될 전망이다.
따라서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배타적인 울타리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 하에서 예상보다 빨리 취해진 이번 DVDP에 대한 수입선다변화 해제 조치는 기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가전시대에서 국산제품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