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陽熙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많은 국민의 마음은 춥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밝고 희망적인 나라에서 어깨를 펴고 살았는데 갑자기 끝없이 추락하는 비행기에 탄 기분이다. 과연 조종사는 있는 것인가.
돈가진 기구(IMF 등)나 나라들의 우리에게 대한 개혁 요구가 끝이 없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 등의 목록이 매일 불어나고 있다. 대부분 경제활동에 관한 우리의 폐쇄적인 관행을 없애고 개방적인 환경을 갖추자는 것인데, 이것들이 필요한 줄 우리도 알고 있으나 기득권을 가진 이해집단의 반발이나 정경유착 등의 이유로 스스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도 많은 줄 안다.
IMF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분야이나 우리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교육과 연구 분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해 국가와 각 가정에서 부담하는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치면 국방비를 훨씬 능가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과연 이것이 개방적인 구조로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가 자못 궁금하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하여 초, 중, 고의 전 학년에 걸쳐서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고 조금이라도 이기기 위하여 별별 과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의 일부 지역의 경우 주부의 40% 이상이 과외비 조달을 위하여 부업을 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매년 7조원 이상이 사교육비로 들어가며, 이는 수년간의 교육 개혁에도 불구하고 증가 추세에 있다. 과연 이 투자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가.
매년 수십만 명이 새로 대학의 문으로 들어오나 몇만명을 제외하고는 졸업 후 제 전공의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IMF이전에 이미 그랬으며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 질 전망이다. 대학의 사명이 기본적으로 고등교육을 통한 지식 개발 및 전수에도 있겠으나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배출하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구조와 틀 안에서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등 교육기관의 거품빼기, 구조 조정이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상황은 이미 다가오고 있다. 내년에는 불경기로 인해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의 등록 포기율이 수십 퍼센트 이상으로 급증할 것이며 대학 졸업후 취업이 불투명한 학과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텅텅 비게 될 전망이다. 재정자립이 불가능한 대학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며,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같은 방법밖에 없다. 즉 경쟁력 있는 것을 살리고 수요가 적은 분야는 합병 또는 매각하는 것이다. 대학 내의 학과간의 조정, 대학과 대학의 합병 인수, 대학과 전문대학간의 교류 등 다양한 방법이 이미 여러 대학에서 검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의 운영도 개방적, 효율적으로 바꾸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 분야에 관계없이 대학본부-단과대학-학과-전공으로 구분된 획일적인 조직체계는 필요 이상의 오버헤드를 가져오므로 단계를 축소하는 것이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것도 우리나라 정부 조직을 2단계 내지 3 단계로 줄이는(예을 들면 동사무소 폐지)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개발이나 연구는 경제위기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타격을 입어 온 분야이다. 먹고살기가 바쁜데 연구는 무슨 연구이냐 라는 견해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기술개발이야말로 위기극복을 위한 지름길이므로 어려울 때 더 투자해야 한다고 정부나 기업 모두 외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정부의 연구비 예산이 휘청거리고 있고, 기업의 연구개발분야는 사업이 속속 폐기되고 있다. 미래를 팔아서 현재의 곤란을 극복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구 분야의 거품빼기가 필요하다. 교육에 비하면 미미한 투자이지만 과연 지금까지 효율성이 높고 생산성에 기여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가 자문해 볼 때이다. 대학, 기업, 전문 연구기관 할 것 없이 모두 외형에만 치중하여 내실을 무시하지 않았는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중복 연구가 경쟁을 불러일으켜 높은 수준의 연구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잘못 운용되면 같은 전공분야 사람끼리 나누어 먹기로 될 수도 있다. 대덕연구단지 같이 국책 및 기업 연구소들이 밀집하여 모여진 곳에서조차 모든 연구기관이 따로따로 운동장, 식당, 인쇄시설 등을 갖는 것은 낭비 이전에 무계획에 가깝다고 본다.
교육부, 과기처, 정보통신부, 통상산업부 등에서 국가 수준의 기술개발의 조정없이 연구개발정책이 수립되었지 않았나도 검토하여야 할 시점이다. 새 정부에서 과학기술에 높은 위상을 부여하면 자동적으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외부의 압력으로 우리 경제구조가 큰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교육, 연구 분야는 스스로 신뢰성을 확보하여 국내외에서 외면당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