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영화계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신인감독들의 바람이 거셌다. 많은 신인감독들의 데뷔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연출한 영화가 잇달아 흥행시장에서 성공을 거둠으로써 영화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올해 무려 20명의 신인감독들이 데뷔,맹활약을 펼쳤고 그 가운데서도 단편영화 「인재를 위하여」로 주목받았던 해외유학파 장윤현 감독의 「접속」은 서울관객만도 80만을 동원하는 등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떠올라 신인감독의 역량을 과시했다. 이 외에도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서울 18만),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송능한 감독의 「넘버 3」(서울 30만),한지승 감독의 「고스트 맘마」(서울 35만),이진석 감독의 「체인지」(서울 20만) 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97년 흥행 10걸」중 5편을 차지하는 등 신인감독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바리케이트」의 윤인호,「억수탕」의 곽경택,「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김응수 감독은 저예산 영화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소재 선택 및 작품성 면에서 높게 평가됐다. 특히 특히 곽경택 감독은 해외유학파(뉴욕대학)로서 제작과정의 과학화를 통해 올해 한국영화계의 한 조류로 등장했던 제작비 절감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편영화 출신,해외 유학파,TV프로듀서 출신 신인감독들의 데뷔가 많았던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같은 신인감독들의 젊음과 열정은 IMF구제금융시대 한파를 뛰어넘을 만큼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IMF한파로 영화제작이 움츠러든 가운데서도 무려 9명의 신인감독이 내년 상반기 중 개봉할 자신의 영화에 대한 담금질에 한창인 것이다.
내년 1월 중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이서군 감독의 「러브러브」,이지상 감독의 「김수영SEX」,문승욱 감독의 「이방인」,심승보 감독의 「남자이야기」,최호 감독의 「바이준」이 잇따라 개봉될 예정이며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박광춘 감독의 「퇴마록」등이 4,5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영화광인이며 23세의 최연소 여류감독으로 기록될 이서군,하틀리메릴 국제시나리오 그랑프리 수상작이며 로테르담영화제 초청작인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코믹잔혹극이라는 이색장르를 선보일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5천만원을 넘지 않는 제작비로 영화제작에 뛰어든 「김수영SEX」의 이지상 등이 영화계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인 감독들의 바람몰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2년 김의석 감독이 「결혼이야기」로 로멘틱코미디의 붐을 조성함과 동시에 그 해 흥행 1위를 차지하면서 물꼬가 터진 신인감독들의 약진은 93년 「그대안의 블루」(이현승),94년 「세상밖으로」(여균동), 「게임의 법칙」(장현수),95년 「닥터봉」(이광훈), 「개같은 날의 오후」(이민용)로 이어졌으며 최근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신인감독들의 작품인 「은행나무침대」(강제규), 「코르셋」(정병각), 「박봉곤 가출사건」(김태균)등이 흥행에 성공했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홍상수), 「유리」(양윤호), 「세친구」(임순례)등의 영화는 수준높은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비교적 윤택해진 한국영화계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뽑아낼 줄 아는 신인감독들의 활약은 앞으로도 한층 왕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영화의 주제,형식,시나리오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며,이로 인해 한국영화의 장르도 더욱 폭넓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