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유럽 통신시장 개방 여파

오는 1월1일 개방되는 유럽 통신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유럽 연합(EU) 15개국 가운데 지배적 통신사업자들이 경쟁력을 갖기까지 몇 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을 제외한 12개국의 통신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EU가 통신시장을 개방키로 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향후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개방을 전제로 하는 통신시장의 효율화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역 자유화가 전세계적으로 자리잡고 있어 통신시장을 닫아 놓는 것이 이 부문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EU는 개방을 통해서만 통신시장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면적인 개방으로 유럽 통신시장에는 무한 경쟁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저렴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즉, 현재 각국에서 서비스중인 업체외에도 월드콤, 콜트, 에스프리 텔레컴, RSL커뮤니케이션스 등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등 다양한 업체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이에 따른 요금 인하가 필연적으로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개방으로 인한 서비스 요금 인하는 무엇보다 국제전화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각국간 국제전화 접속료가 인하되고 있어 96, 97년간 계속된 서비스 요금 인하는 98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개방이 본격화되면 상호 접속비용은 낮아지고 서비스 요금도 인하될 수밖에 없다.

업체들은 지금의 약 3분의 1 수준까지 요금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요금 인하보다는 올 한해 과도기를 거쳐 99년이 돼야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영국이나 스웨덴, 덴마크같이 이미 경쟁 체제가 수립돼 있는 국가에서는 큰 폭의 요금 인하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요금 인하는 시장 개방이 늦춰진 포르투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포르투갈의 지배적 사업자인 포르투갈 텔레컴은 비교적 안정된 사업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방정도에 관계없이 요금을 내린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미 일반 전화부문이 경쟁에 직면하고 있어 경쟁 체제의 도입은 말 그대로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향후 지역적 기반에 상관없이 어느 업체든 유럽에서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운용할 수 있게 되면 국제전화 서비스 요금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현재 스페인 텔레포니카의 네트워크를 임대하는 형식으로 서비스를 제공중인 AT&T는 실제로 자신들이 직접 스페인에서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있다. AT&T는 텔레포니카에 높은 접속료를 지불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고객들에게 저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같은 AT&T의 전략은 유럽지역 사업에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고 많은 업체들이 이를 따라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쟁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기존 지배적 사업자들이 더 기득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관성적으로 서비스업체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5년 전 경쟁 체제를 도입한 영국에서 브리티시 텔레컴(BT)이 아직도 전체 음성전송시장의 85%를, 지역시장에서는 92%의 점유율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개방에 따라 통신서비스의 품질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월드콤, 에스프리 텔레컴은 유럽에서의 사업을 위해 네트워크를 대폭 늘렸다. 월드콤의 경우 특히 런던, 암스텔담, 브뤼셀, 파리,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밀라노 등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광섬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밖에 AT&T가 유니소스와, 그리고 스프린트가 도이치 텔레컴(DT), 프랑스 텔레컴(FT)과 공동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MCI커뮤니케이션스는 BT와의 기존 제휴를 활용하면서 월드콤과의 연계를 통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유럽 소비자들이 받게 될 다양한 서비스에는 이밖에도 전화번호 휴대성이 포함돼 있다. 전화번호 휴대성이 확보되면 소비자들은 어느 국가에서 서비스를 받든, 혹은 어느 업체를 선택하든 상관없이 동일한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유럽 뿐 아니라 미주, 아시아 등 세계 통신시장을 뒤흔들 만한 위력을 갖고 있는 유럽 통신시장 개방이 목전에 다가왔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개방이라는 대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각국이 다소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견해 차이가 조정될 때까지는 커다란 변화가 아닌, 시일을 두고 진행되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게 세계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허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