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Ⅱ-21세기를 준비한다] 이렇게 성공했다

이해연(대우전자 세탁기 해외영업2팀)

도미니카공화국. 미국 동부 카리브해에 산재한 서인도제도의 섬나라다. 인구는 8백만. 지난 6월 우리에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이 조그만 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는 한국인 여성세일즈맨의 화려한 성공스토리가 일제히 실렸다. 도니미카 최대 전자제품 판매업체 가운데 하나인 라디오센트로 사장과 대우전자의 이해연씨가 도미니카 사상 최대물량인 세탁기 10만대 수출공급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올해 도미니카 전체 세탁기 시장 규모는 16만대 정도. 그러니까 이해연씨가 계약한 10만대는 도미니카 전체 시장의 60%에 해당되는 엄청난 물량인 셈이다. 계약체결을 위해 도미니카에 도착하던 날 마치 영화나 TV 광고에서 보는 것처럼 비행기트랩 바로 아래서 바이어가 수행원을 대동하고 대기하고 있고 신문 및 방송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는 이해연씨. 그 순간 저 멀리 아르헨티나에 부모님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한국에 온 보람을 느꼈다는 당찬 세일즈우먼이다.

이씨가 도미니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지주민들 대부분이 손빨래를 하고 있고 세탁기가 소개될 경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시장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던 세탁기 수요가 지방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하고 특히 지방의 경우 세탁기를 트럭에 싣고 빌려주는 세탁기 대여업이 발달돼 세탁기 수명이 유달리 짧아 대체수요가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분석이 뒷받침됐다. 이때부터 이씨의 도미니카 공략작전이 시작됐다. 바이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가이드를 자청해 도미니카 시장 동향과 구매물량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한국의 독특한 음주문화인 원셧을 소개하자 「원셧을 한번 할 때마다 구매물량을 늘려주겠다」는 바이어들의 짓궂은 농담에도 포도주 두병을 마셔버릴 정도로 성심을 다했다.

가격협상을 잘한다고 유능한 세일즈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지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제품을 개발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시장동향을 정확하게 분석, 남보다 한발 앞서 행동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바이어들과의 지속적인 인간관계 유지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도미니카에서 대부분의 세일즈맨들이 영어를 구사하지만 능숙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동양여성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만대 수출계약은 이같은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일 뿐 전체는 아니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21세기에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이 선진국인 미국에서부터 아프리카 오지에 이르기까지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미 전 세계에 국내 전자업체들이 현지생산법인을 설립해 제품생산에 나서고 있으며 이씨와 같은 세일즈맨들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기업들과의 경쟁속에서 제값을 받고 하나의 제품이라도 팔기 위해서는 경쟁국가들의 영업인들에 비해 더 많은 땀과 노력, 그리고 실력이 밑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곧 무한경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같은 상황 변화는 이씨에게 해외영업에 더욱 애착을 갖게 만들고 있다. 프로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제2의 도미니카 신화를 꿈꾸고 있는 이해연씨. 어려운 경제속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은 바로 이씨처럼 프로정신을 갖춘 영업인들이 있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양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