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이황림 감독의 "인연"

「애란」 이후 9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황림 감독의 신작. 감성은 낡고,아이디어도 새롭지 않지만 농담을 즐기는 재미는 있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반쪽 찾기」이야기를 그린 박중훈표 로맨틱 코미디이다.

36개월짜리 할부로 산 선물과 뻔한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한 경력이 없는 플레이보이 지훈(박중훈 분). 그의 하루 일과는 걸려오는 여자들의 전화를 선별하고,「어젯밤 어떤 여자의 팬티를 벗겼는가」에 대한 화려한 무용담으로 시작된다. 반면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양희(김지호 분)는 순결에 대해 강박관념을 지닌 노처녀. 도전적이지만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눈 높이만은 절대 낮출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영화 「인연」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이 「악연」으로 만나, 싸우고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라는 동양사상을 통해 「필연」으로 만든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퇴근시간의 북적거리는 엘리베이터 안. 양희의 스커트가 지훈의 우산에 걸려 벗겨지고 졸지에 치한으로 몰린 지훈은 봉변을 당한다. 이후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악연은 계속된다. 지훈에게 양희는 「같이 자고 싶지 않은 유일한 여자」이며 양희에게 지훈은 「머리에 온통 섹스밖에 없는 매력 없는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의기투합하기로 한다. 지훈은 지겹게 따라 다니는 옛 애인을 떼어버리기 위해 양희를 결혼할 여자로 소개하고, 양희는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지훈을 사귀는 남자로 소개하는 것. 가짜 연인으로 행세를 하던 이들은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키스를 하게 되고 이후로 이들의 「계약연인」 관계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지훈은 왠지 다른 여자들과의 데이트가 심드렁하게 느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양희의 뒤를 쫓게 된다. 그러나 섹스만을 화제로 삼는 지훈에게 양희의 반응은 언제나 매몰차고 냉정할 뿐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다른 여자와 자고있던 지훈의 「기」가 빠져나가 양희가 다른 남자와 투숙한 호텔 방을 기웃거리며 화재경보장치를 누르는 장면. CG로 처리된 이 장면은 박중훈의 표정연기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 결국 지훈의 「기」는 양희를 무사하게 「순결한 처녀」로 지켜주고 마지막 결혼작전이 시작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적 남성주의 시각의 우월주의가 불쾌하고 패러디영화를 보는 듯한 혐의가 분명하지만 종횡무진 하는 박중훈의 개그가 아직까지는 볼만하다.

「꼬리치는 남자」 이후 두 번째로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CF스타 김지호의 연기는 여전히 합격점을 주기엔 역부족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