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방송산업은 멀티미디어산업의 대계를 확립할 제도차원의 레이아웃이 드디어 그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제도차원의 방송산업 정비가 수년을 끌어온 끝에 마무리되었다 해도 그 운동장에서 뛰어 줄 민간기업들의 움직임은 IMF체제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올해의 방송산업은 법제도 정비만을 기다리며 기대에 찬 출발을 해왔던 예년과 달리 「흐린날의 연속」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방송산업을 판가름지을 계기는 정부조직 개편에서 출발할 전망이다.
신정부가 공보처 폐지를 천명한 상황에서 문제는 방송기능이 어느 부처 또는 기관 관할로 넘어가느냐에 따라 방송산업의 커다란 윤곽이 결정될 전망이다.
먼저 공보처의 복안대로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기능이 문화부문과 통합, 가칭 문화부 관할에서 움직일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공보처 내 방송관련 미디어업무가 그대로 문화부로 넘어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 가정에서는 방송정책이 기존 틀을 크게 뛰어넘는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소프트웨어로서의 방송이 더욱 구체화될 것이지만 몇년 동안 노출돼온 부처간 갈등문제는 계속적으로 잠복한 상태에서 움직여나갈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 상정할 수 있는 상황은 공보처와 함께 방송 주관부처를 자임했던 정보통신부의 바람처럼 방송기능이 정보통신부로 일원화되는 것.
정보통신부는 지금까지 가칭 방송영상산업국이라는 기구 신설까지 검토하는 등 방송기능 포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방송은 자율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계획대로 가칭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의 정책 및 인허가 업무를 총괄할 경우도 엄청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방송정책과 인허가라는 업무가 비정부기관에 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정부부처에서는 우려섞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으나 이 안이 채택될 경우 미국의 FCC를 상당부분 참조하는 형태로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방송기능이 정부조직 어디에 포함되든 방송시장 개방이라는 또다른 변화와 맞닥뜨릴 경우 방송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제까지 방송산업 진출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면 불허됐던 「대기업에 대한 개방」도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부조직개편과 관계없이 IMF체제에 따라 정부통제를 받아왔던 방송유관기관들의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아리랑TV, K채널 등 정부통제 및 지원을 받아왔던 각종 조직의 존폐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상존한다.
방송기능의 관할을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이 마무리될 경우 법제도 정비의 결정판인 새방송법 제정도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새방송법 논의가 몇년 넘도록 지속하면서 대략적으로 합의가 이뤄지기는 했으나 초안을 마련할 당시와 지금과는 상당부분 환경이 바뀐 상태라 새로운 상황에서 상당부분 논의를 다시 해야 하는 부담도 안아야 할 전망이다.
이같은 방송산업을 둘러싼 법제도 정비가 마무리됐다고 하더라도 방송부문이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방송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전개했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추진기업들이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IMF체제에 따라 방송진출을 꿈꿔왔던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태고 그 파장은 2년에 걸쳐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기업들의 과감한 방송산업 진출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대통령 당선자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 산업적 시각보다는 공익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돼 대기업들의 방송산업 진출은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위성방송 상용서비스나 케이블TV 전국서비스는 법제도 정비 때문이 아닌 경제여건에 밀려 상당기간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IMF체제 이전의 상황에서도 지상파뿐만 아니라 지역민방, 케이블TV 상당수가 광고 수주 격감 등의 어려움으로 M&A시장에 올라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IMF체제까지 겹친 상황에서 수익성 개선이 여의치 않은 방송산업에 투자할 기업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미 방송산업에 진출한 기업들의 군살빼기도 변수다.
지상파 3사의 경우도 새해 광고수주율이 50%대에서 맴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국면이 지속될 경우 방송산업 전반에 걸쳐 대량 감원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섞인 진단을 하고 있다.
<조시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