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8 영상산업 쟁점 (1);대기업 구조조정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영상산업계의 새해를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다. 자금경색에 의한 시장파고의 높낮이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고 새정부 출범에 따른 영상정책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영화, 음반 시장개방 여부, 이에 따른 외국업체 진출 러시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새해 벽두부터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환경변화와 새정부의 정책변화에 따른 영상산업계의 움직임과 쟁점들을 테마별로 9회에 걸쳐 분석한다.

<편집자>

올해 국내 영상산업을 뒤흔들어 놓을 이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대기업들의 영상사업 구조조정을 들 수 있다. 90년대 들어 국내 영상산업의 외형을 불려왔으며 상당부분 자금줄의 역할을 해왔던 대기업들의 정책변화는 영상업체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영상사업 진출에 대해 기존업체들은 한동안 『제조업에 주력해야 할 대기업이 영화, 음반, 비디오 등 문화산업에까지 진출, 기존시장을 와해시키고 독점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같은 비난은 기존업체와 대기업이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9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됐으나 국내 영상사업에서 「대자본의 필요성」 및 기존업체와 대기업의 역할분담론이 제기되면서 대기업의 영상사업은 사실상 면죄부를 받기에 이르렀다.

대기업의 영상사업 참여는 프로테이프시장 참여로부터 시작됐다. 80년대 중후반 중소 제작사 위주의 프로테이프시장은 대우전자와 SKC, 미디아트, 삼성전자가 잇따라 참여하고 뒤이어 두산그룹, 현대그룹 등이 참여하면서 대기업들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일부 대기업은 사업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철수하고 말았지만 나머지 대기업들은 프로테이프시장뿐만 아니라 영화, 음반시장 등으로 영토확장 경쟁을 벌여 나갔다.

이같은 문어발식 확장은 멀티미디어사업을 미래사업으로 보고 다양한 소스를 확보한다는 전략에서 비롯됐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케이블TV방송뿐만 아니라 나아가 위성방송까지를 겨냥하고 있는 대기업들로서는 프로그램이 자산일 수밖에 없으며 소스원 확보는 시장선점에 있어 최고의 무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장기간 침체되고 마침내 IMF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상황은 돌변하고 있다. 「대자본론」을 외치던 대기업들의 목소리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올해를 기점으로 대기업들의 백화점식 영역확장 전략은 대폭적인 궤도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만 내다보고 달려온 결과 내용물은 없이 거품만 가득했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자조섞인 한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대기업이 영상사업에 대해 얼마나 막연한 신기루에 도취해 있었던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시대적 과제가 아니라 신기루에서 벗어나는 현실론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SKC가 영화, 비디오사업을 한계사업으로 규정, 존폐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디지탈미디어가 영화배급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도 이같은 현실론에 입각한 것이다.

영화사업 축소조정은 예상외로 대폭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외화배급사업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여 관련 외화판권팀들은 외곽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프로테이프사업도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한계사업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없지않다.

음반사업도 거품 거두기 작업이 강도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영상사업단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획제작사업을 당분간 유보할 가능성이 커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선에서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게임사업의 경우 시장진입 가능성과 성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한 투자는 좀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영상산업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대기업들이 사실상 현업종사자들의 자금원 역할을 해온데다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않아 자금 흐름의 왜곡현상을 불러오지 않겠느냐는 우려인 것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현업종사자들과 기존업체, 대기업이 서로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않다. 예컨대 제작은 전문업체가 담당하고 대기업은 유통 및 시장의 확대와 활성화에 매진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다. 90년대 초 호황시절 대기업과 전문업간의 「밀월관계」를 재현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타가 잡혔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