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 주전산기 경쟁 격화

국산 주전산기시장의 선두자리를 놓고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간에 자존심을 건 시장쟁탈전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두 회사간의 경쟁은 올하반기들어 현대전자의 주전산기 판매가 급증하면서 그동안 1위를 고수해온 삼성전자를 위협한데서 비롯됐다.

그동안 국산주전산기시장은 삼성전자,현대전자,LG전자,대우통신 등 대기업 4사가 중대형 컴퓨터국산화개발이라는 국책프로젝트에 참여해 지난 88년 주전산기Ⅰ,92년 주전산기Ⅱ,96년 주전산기Ⅲ 등을 잇따라 개발 공급하면서 지난 10년간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차이로 석권해왔다.

지난해들어서도 7개월간 삼성전자가 전체 공급물량(44대)의 67%인 33대를,현대전자가7대,LG전자가 5대 그리고 대우통신이 1대를 공급하는 등 삼성의 선두수성전선에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전자가 기존 국산주전산기Ⅲ의 후속기종으로 자체 개발한 「8웨이 방식」의 신국산주전산기(모델명 하이서 UX9000)를 지난해 8월부터 본격 공급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시작했다.현대전자의 신국산주전산기는 기존 국산 주전산기Ⅲ에 비해 확장성과 신뢰성이 우수한것으로 국내외에서 평가받으면서 공급이 급증한 것이다.

이 결과 지난해 11월말 주전산기 공급계약 집계에서 현대전자가 42대를 판매해 삼성전자의 40대를 제치고 1위를 처음 탈환한 것으로 나타났다.삼성측에서 11월분 공급계약 실적을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전산기는 국책프로젝트로 개발됐기 때문에 공급계약 실적을 매달 컴퓨터연구조합을 통해 정부에 보고토록돼 있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계약시점과 실제 공급시점이 달라 각사의 편의에 따라 계약실적을 다음달로 이월하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다.전년동월 또는 동기와 비교해서 실적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계약물량중 일부를 유보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는 주전산기 연간 판매실적을 11월말로 마감하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한파 등으로 수주부진이 예상되는 올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계약실적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1월 계약분을 보고하지 않음으로써 지난 10년간 굳게 지켜온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되자 7대를 다시 보고해,지난해 11개월간의 주전산기 총 공급계약 실적이99대에서 1백6대로 바뀌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12월 계약실적 보고에선 마치 대입원서 지원때의 눈치작전을 방불케하는 신경전이 벌어졌다.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서로 1위를 자신하면서 처음에는 현대전자가 1대 차이로 더 많이 보고됐으나 지난 7일 현재 삼성 49대,현대 44대로 바뀌었다.뒤늦게 뒤집힌 사실을 알게된 현대전자는 9일 오후 미보고분중에서 7대를 추가 보고해,51대로 늘어나 삼성보다 다시2대 앞섰다.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또다시 뒤바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아직도 미보고 물량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회사가 현재까지도 보고하지 않은 잔여 계약물량을 합산할 경우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지난해 주전산기 공급계약 실적은 거의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다만 1위 자리를 놓고 10년만의 탈환이냐 수성이냐 하는 문제때문에 이처럼 어이없는 현상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회사가 아직도 민수시장에서 제대로 명암을 내놓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뒤로한 채,조그만 사안에 매달려 치열한 다툼을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국산주전산기의 연간 판매실적은 국내 중대형 컴퓨터 시장의 10%선에 불과할뿐 아니라 주로 정부기관 수요에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국산주전산기는 단위생산규모가 외산 중대형컴퓨터에 비해 크게 적고 다양한 민수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솔루션능력이 떨어지는 등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게 급선무로 꼽히고 있다.

컴퓨터업계관계자들 조차 『아직도 수입의존율이 70% 이상에 달하는 등 시장경쟁력 확보가시급한 국산 주전산기를 한 대 더 공급했다는 실적이 얼마나 의미를 갖게 되겠냐』며 『이보다는외산중대형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데 힘을 집중해야할 것』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국내 중대형컴퓨터 기술 국산화」란 기치아래 지난 88년부터 추진돼온 국산 주전산기 개발및 보급사업은 이제 신천지 개척을 위한 제2의 장정에 나서는 한편으로 시장개방과 IMF(국제통화기금)한파등으로 지난 10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개되게 됐다.따라서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전자의 선전으로 야기된 이번 선두타툼이 기술개발,마케팅및 서비스능력 향상으로 이어져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