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구제금융에 상응하는 전폭적인 시장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국민정서상 허용되지 않았던 일본 영화, 음악의 개방문제와 한국 게임시장의 성장을 예상한 외국 게임업체들의 국내진출 시도가 고개를 들고 있다.
내달 25일 공식 출범할 새정부는 영상산업 관련 정책을 「지원강화,자율보장」이라는 대원칙 하에 펼쳐갈 것임을 공언, 업계 종사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특히 자율보장 기조는 「심의완화」로 이어져 영화, 음악, 게임시장 개방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유세 당시 『한국민의 자질이 일본문화의 충격을 극복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해 개방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물론 김 당선자는 일본에 대한 국민정서를 감안해 「단계적 개방론」을 내놓는 신중함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난국을 맞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경제적 지원에 기대는 정도가 커 영화,음악 등 문화상품에 대한 부수적인 개방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일본 영화,음악이 국민의 눈과 귀 지척에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영화수입사,영상사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일본영화 수입계약을 서두르는 민첩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실락원」을 비롯해 사가쇼치쿠社의 극영화와 애니메이션 국내 독점배급권,도호社와의 일괄 수입계약등이 이미 체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원령공주」를 비롯한 만화영화도 다수 수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음악의 경우는 보다 빠른 개방이 예상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팬들은 구보타,세이코,록그룹 X재팬 등 일본 인기가수들의 음악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의 음반이 청계천 일대를 중심으로 대량 불법복제돼 수십만장씩 팔려나간 것이다. 하물며 정식 수입이 허용되면 포괄적이고 대대적인 인기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니그룹계열 음반사인 소니뮤직의 직배도 본격화될 것이다. 실제 소니뮤직코리아는 지난 96년부터 일본음악의 한국발매를 준비해왔다.
게임의 경우 이미 외산제품이 7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외국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올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외국업체 국내진출의 최대 걸림돌의 하나로 제기되고 있는 까다로운 게임심의규정이 새정부 출범과 함께 대폭 완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외국업체의 국내진출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 게임업체는 각각 현대 및 롯데와 합작법인을 설립, 운영중인 일본 세가엔터프라이즈사와 (주)쌍용과 합작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PC용 게임업체인 미국 일렉트로닉부티크사등 극소수이다.
세가의 경우 현대와 롯데가 세가사의 이름을 빌린 오락실 체인사업에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적극성을 보이고 있고, 삼성전자와 SKC 등도 일부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한 거래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세가사의 국내 단독법인 설립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심의규정 완화는 이를 더욱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세가와 경쟁을 펼치고 있는 소니, 닌텐도 등도 한국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국내 진출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되며 최근에는 일본 PC용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T사와 유럽의 게임 유통업체인 E사 등도 국내 진출을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기업 뿐만 아니라 외국 중소 게임 및 유통업체들도 상당수가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업체들의 국내 진출 움직임에 대해 국내 업체들은 「우려」보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부가 국내 게임 유통실태분석 및 유통구조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작년 11월 국내 59개 게임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외국업체들이 국내 진출할 경우 심각하거나 존립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응답은 약 30%에 불과했고, 나머지 70%가량의 응답자들은 「문제가 없거나, 약간의 타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17%는 「시장규모가 확대돼 오히려 좋아질 것」으로 답했다.
게임개발 및 유통업체인 엔케이에스티엔터테인먼트의 두진 본부장은 『현재 국내 게임시장은 불합리한 유통구조 등으로 인해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고 있어 영향력 있는 외국업체들이 선진유통기법으로 국내에 진출할 경우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어차피 국내 대기업들이 고가의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외산 게임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라리 외국업체들이 직접 진출하는 것이 시장확대를 위해서는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일본 영화, 음반의 개방과 외국 게임업체의 국내진출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국민정서 등의 문제로 한동안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확대라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기대가 함께 내포돼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은용, 김홍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