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냉장고업체들이 올해 내수시장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예년과 달리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냉장고 시장은 보급률이 이미 한계상황에 이른 지 오래인데 최근 경기 침체로 냉장고 구매가 지연되면서 올해 사상 최대의 불황에 직면할 전망이다. 지난해 1백80만대였던 냉장고 시장규모는 올해 1백70만대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냉장고 시장은 지난 94년과 95년에 대규모 아파트 건설붐이 일면서 냉장고의 대체 수요가 활발해져 20여만대의 과수요를 빚기도 했다.
그런데 이같은 조기구매 여파로 96년부터 냉장고 시장이 수요부진을 겪으면서 지난해 불어닥친 경기 침체의 영향까지 받아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불경기 속에서 구매욕구를 억누르려는 심리가 작용해 냉장고 교체시기를 앞으로 1∼2년 뒤로 늦추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 말하면 경기가 되살아나고 늦췄던 교체구매가 가시화할 2000년께 들어서야 냉장고 시장이 연간 1백89만~1백90만대의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했던 90년대 초반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반적인 침체 국면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시장의 대형화 추세는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이 예상된다.
지난해 냉장고 시장은 4백ℓ급 이상 중대형 제품이 전체시장의 75%를 차지했는데 특히 전체시장의 37%를 차지하면서 주력 상품의 위치에 오른 5백ℓ급 제품이 올해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가전 업체들은 올해 내수시장에서 그다지 기대할 바가 없다고 보고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동남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등 가전제품에 대한 보급이 본격화하고 있는 지역에서 냉장고 수요가 증가해 세계 냉장고 시장은 올해에도 3% 안팎의 성장이 기대된다.
국산 냉장고는 국내에서의 치열한 시장경쟁 결과 품질 수준이 높아져 그동안 신기술 개발이 소홀했던 일본과 미국, 유럽 업체의 제품과 격차를 크게 좁혔다. 오히려 중소형 제품 시장에서 국산 냉장고는 외국 제품을 앞선다는 평가다.
이같은 품질력에다 최근의 환율 급등으로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쌍두마차로 해 국산 냉장고의 수출은 올해 고성장을 구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냉장고 수출을 강화해 각각 1백50만대를 수출했는데 올해 40% 정도 수출 목표를 상향 조정했으며 대우전자 역시 지난해 1백35만대에서 올해는 1백75만대를 수출한다는 목표다.
세 회사가 이같은 매출 계획을 그대로 달성할 경우 연간 5천3백만대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냉장고 시장에서 국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10%를 웃돌게 된다.
이처럼 냉장고 사업에서 수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사업구조를 조정하기 시작했는데 올해에는 이같은 전략이 더욱 강도 높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중대형급 고부가가치 제품을 광주공장에서 주로 생산하고 3백ℓ급 이하 중소형 제품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생산하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광주공장에 여러 가지 제품을 한꺼번에 생산할 수 있는 혼류 생산시스템을 비롯한 첨단 생산설비를 갖춰 세계 어느 시장에나 즉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대우전자는 인천공장에서 수출용 제품을, 광주공장에서는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기로 생산구조를 이원화했으며 전반적인 해외투자 축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만큼은 해외공장의 신설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창원공장을 주축으로 세계시장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는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모듈 설계기법을 적용해 세계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가전3사는 또 현지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적기에 공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해외생산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2001년까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인도네시아, 베트남) 중남미(브라질) 북미(멕시코) 유럽(물색중) 등 권역별로 모두 9개의 현지 완결형 생산공장을 갖출 계획이다. 특히 독자 개발한 독립냉각시스템을 세계시장에 적용하고 양문여닫이(사이드 바이 사이드) 냉장고를 월드와이드 브랜드인 「지펠(Zipfel)」로 적극 육성해 브랜드 지명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LG전자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확대와 함께 생산라인 확충을 통해 세계 냉장고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로 했다.
LG전자는 국내 창원공장 외에도 베트남, 인도,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의 생산기지를 확충하는 한편 독립국가연합(CIS), 중남미 지역에도 현지 생산공장을 세워 전방위적인 공급체제를 갖춰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해외생산 확대에 주력하는 경쟁사와 달리 국내공장을 세계시장 공략의 중심 축으로 해 해외투자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대우전자는 최근 전방위적인 물량공세를 펼쳐 세계 최대의 공급업체로 부상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냉장고 비전 2002」라는 이 전략에 따르면 대우전자는 오는 2002년까지 국내 2백만대, 해외 5백만대 등 총 7백만대의 생산체제를 갖춰 세계 냉장고 시장의 12%를 점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우전자는 총 10억달러를 투자해 베트남, 멕시코, 스페인, 인도 등 현재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4개 지역 외에 8개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가전3사는 이들 해외공장을 현지 시장은 물론 인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적극 활용할 방침인데 현지 실정에 맞는 제품 개발과 함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가전3사는 또 수출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수출용 국산 냉장고의 주종을 이뤘던 2백~3백ℓ급 중소형 제품 대신에 4백ℓ급의 대형 제품 비중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 국내에 선보인 신제품을 곧바로 해외시장에 자가 브랜드로 들고나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가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싱싱특급냉장고」와 「독립냉각 냉장고 따로따로」를 수출 주력상품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대우전자도 98년형 신제품 「탱크냉장고 냉기그물」을 이달 국내에 출시한 데 이어 다음달부터 유럽, 중남미, 일본, 아시아, CIS 등 전세계에 동시에 출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98년 신제품을 2월부터 전세계 30여개국에 동시에 판매해 간판 모델로 육성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냉장고의 수출여건이 앞으로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데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소비전력이 떨어지는 냉장고 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다. 이들 선진국은 또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프레온가스를 규제하기 위해 대체냉매를 채용한 냉장고만 판매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따라서 이들 선진국에 수출하는 국내 냉장고업체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부 절연막을 두껍게 하고 대체냉매에 맞는 새로운 냉각기술 개발비용을 들여야 하는 등 원가부담이 커지게 됐다.
또 일본과 중국 등 우리의 경쟁국 업체들이 최근 세계 곳곳의 냉장고 시장에서 전개하고 있는 저가공세도 새로운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업체들은 우리 업체보다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워 동남아 현지공장에서 생산한 냉장고를 동남아, 중남미 등지의 시장에 값싸게 내놓고 있다. 중국의 냉장고 업체들은 자국시장에서 수요에 비해 생산이 많은 생산과잉 문제에 직면하자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무차별적인 공세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과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는 우리 냉장고업체들이 최근 해외시장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제값받기 마케팅을 뿌리째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국산 냉장고의 최대 수출지역인 동남아시장이 최근의 통화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로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보여 국내 업체의 수출 확대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같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지만 국산 냉장고의 해외시장 공략은 지난해 준비단계를 거쳐 올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울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 냉장고업체들에 있어 그동안 중심시장이었던 내수시장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익숙한 일개 시장으로 그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
그렇지만 내수시장은 앞으로도 초대형 냉장고, 대체냉매 냉장고 등 냉장고업체들이 집중 육성하고 있는 제품의 초기 물량을 소화하는 시장으로 신기술의 경연장 구실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