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를 맞아 그동안 수면 아래서 진행돼온 채널 티어링(Tiering)제도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채널 티어링이란 케이블TV에서 제공하는 다수의 채널을 몇개의 꾸러미로 묶어 서로 다른 가격으로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하며 원래 미국 케이블TV 업계에서 90년대 이후에 활발하게 도입,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채널 티어링과 비슷한 개념으로 패키지 서비스가 있는데 이는 케이블TV망을 통해 제공되는 서로 다른 종류의 서비스를 결합해 묶음을 만들고 묶음별로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을 일컫는다. 가령 케이블TV 프로그램과 인터넷 서비스 또는 인터넷폰 서비스 등 부가 서비스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하는 것 등을 말한다. 채널 티어링과 패키지 서비스를 혼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채널 티어링과 패키지서비스는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국의 경우 채널 티어링은 수많은 베이식 케이블 네트워크를 제한된 대역폭의 전송망에 좀더 효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도입, 운영돼왔다. 미국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베이식 케이블TV 네트워크가 1백20여개에 달할 정도로 케이블TV 사업자가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케이블TV 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는 전송망의 대역폭이 고작 3백50㎒밖에 되지 않아 채널 선택이 불가피해졌고 SO측 역시 가입자를 효과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가격대의 채널묶음을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채널 티어링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채널 티어링 도입과 관련해 그동안 케이블TV업계에선 종합유선방송국(SO)과 프로그램 공급사업자(PP)가, 그리고 PP사업자 사이에 찬반 양론이 크게 대립해 도입 전망이 매우 불투명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IMF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케이블TV 가입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채널 티어링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현재 상당수 케이블TV 가입자가 월 1만6천원선인 케이블TV 사용료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다양한 가격대의 채널 묶음 서비스를 개발해 가입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인 형편에 맞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공보처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보고를 통해 보급형 채널 허용방침을 밝히면서 채널 티어링 제도 도입 문제가 아주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채널 티어링 제도는 워낙 민감한 사인인 점을 감안, 도입하더라도 케이블TV업계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케이블TV사업자 가운데서는 SO들이 가장 먼저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SO들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계유선사업자와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가격대의 채널 묶음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중계유선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유사한 보급형 서비스와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채널 묶음 서비스를 개발해 조기에 케이블TV산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특히 중계유선사업자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부산 지역 SO사업자들은 독자적으로 채널 티어링(안)을 마련,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같은 SO들의 입장에 대해 PP사업자들은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이다. 영화, 뉴스, 드라마 등 시청률이 높은 채널은 채널 티어링 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해야만 PP들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이들 채널을 제외한 상당수 채널은 SO들이 일부 인기 채널을 중심으로 채널 티어링 제도를 운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PP들의 경영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극구 반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 PP사업자들도 채널 티어링 제도 도입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 없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다만 채널 티어링 제도를 도입할 경우 시청률이 저조한 PP들의 경영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한 만큼 SO뿐만 아니라 중계유선, 지상파TV, 위성채널 등 다양한 매체에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전송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직까지도 SO와 PP간에 의견차가 큰 것이다.
아무튼 최근 들어 IMF 한파의 영향으로 케이블 TV가입자들이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채널 티어링 도입 논의가 부쩍 활기를 띠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종합유선방송위원회 김유정 책임연구원 등이 지난해 10월 1천명의 케이블TV 가입자를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97 케이블 텔레비전 시청행태 조사 연구」 자료에서도 전체 조사 대상자의 59.3%가 채널 선택에 따른 차등 가격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앞으로도 차등 가격제에 대한 찬성 의견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국내 케이블TV사업자들 사이에는 채널 티어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SO와 PP의 개별적인 입장을 떠나 전체 케이블TV산업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