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권을 모르고 떨어지는 가격, 엎친데 덮친 IMF 한파 등 계속되는 악재로 고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국내 반도체업계가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고 있다.
새해들어 D램 가격의 오름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에 따라 2달러 이하까지 내려갔던 16MD램의 국제 현물시장 가격이 이번주 초에는 3, 4달러대까지 일제히 올랐다. 일부 제품의 경우 최대 70%까지 가격이 오른 것도 있을 정도다.
당초 업계에는 이번 가격 상승이 신년 특수에 따르는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다행히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D램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이다.
D램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일시적인 공급부족이다. 최근 D램업계는 불황 타개를 위해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통상적인 D램 사이클을 앞당겨 가격 하락에 따르는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다.
EDO램 라인을 부가가치가 높은 싱크로너스 D램 등으로 전환시키고 있고 16M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64MD램 공급을 대폭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직까지 수요가 남아있는 EDO램 시장에 공급이 달리면서 전반적인 가격 상승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싱크로너스 D램이나 64MD램 등 차세대 제품 생산이 생각처럼 안정화되지 못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제품군에서 가격이 동반상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의 D램 가격 상승이 주로 EDO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같은 분석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전반적인 물량부족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 연말부터 반도체업체들이 달러확보를 위해 현물시장에 대량으로 제품을 밀어내면서 재고가 바닥났고 이로 인한 수급 불안정이 최근의 D램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의 덤핑 제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아시아권 반도체업체들이 저가 공급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 반도체업계의 관심은 D램 가격이 어느 선까지 상승할 것이냐는 부분과 가격 상승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점에 쏠리고 있다.
우선은 최근의 상황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달 말까지 상승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측이다.
이유는 이달 말 설 연휴. 주요 D램 공급업체인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업체가 설 연휴에 사실상 업무를 중단하기 때문에 D램 수요처가 사전에 물량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같은 가정이 성립할 경우 16MD램 가격이 최고 5달러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문제는 1월 이후다. 1월 이후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1월말 가격을 유지하면서 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하다.
1월 이후 또다시 예전의 가격 하락의 조짐이 보일 경우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돼 있는 D램업체들이 앉아서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사의 덤핑 제소 움직임도 가격 하락을 막아내는 제동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하반기의 반도체시장 경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반도체업계의 반응은 의외로 더 낙관적이다.
우선 올 하반기 반도체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호재들이 산재해 있다는 설명이다. 윈도98의 출시에 따르는 PC 메모리 수요의 팽창, 세계 정보화 추세로 인한 정보통신기기 수요 확대 등 전반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싱크로너스나 램버스D램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D램업체 수익구조 개선에 청신호가 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98년 하반기는 세계 반도체업계의 95년도 설비투자가 시장에 직접 효과를 미치는 시기. 하지만 95년 이후 대다수 반도체업체가 10∼20% 정도씩 시설투자를 줄여왔기 때문에 지난 2년동안과 같은 공급 초과 현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메모리업체들이 불황타개를 위해 64MD램으로 세대교체를 강행하면서 생산수율 등 기술과 마케팅에서 미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후발업체들의 자연적인 도태까지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