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9);생산 장비 국산화

생산 장비 국산화

국내 전자산업의 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부품산업부터 우선 육성해야 한다는 사실은 상식적인 얘기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품산업의 발전도 부품 제조장비산업의 기술적 지원이 그 전제조건이다.

『장비 제조 기술은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크다. 우선 장비산업이 견실하면 전방산업인 부품분야는 물론이고 조립, 세트 등 전자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진다. 또한 장비시장이 확대되면 여기에 채용되는 관련 부품시장의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반도체협회 김치락 부회장)

『부품 분야에서 제조장비의 자급 없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부품업체의 설비투자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이 경쟁국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전자 이천공장 P과장)

실제로 핵심장비 대부분을 경쟁국으로부터 수입, 사용하고 있는 국내 부품업체들은 이미 장비를 발주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업 내용과 추진단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국내업체들이 생산 단계에 접어들기도 전에 경쟁국이 양산에 나서는 등 선수를 빼앗기는 사례도 많았다.

이같은 명분 외에도 부품장비산업은 시장전망이 매우 밝고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유망분야다. 「메모리신화」로 대변되는 반도체 장비 분야만 보더라도 미래산업, DI, 케이씨텍 등 4∼5개 업체가 국산 장비의 개발로 한해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한 영화OTS, SMC, 백두기업, 미농상사 등 일부 PCB장비업체들도 자체 개발한 최신 장비를 외국에 수출하는가 하면 개발분야를 첨단 PCB장비로 전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부품 영역은 제조 장비 개발면에서 아직도 취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항기, 트랜스, 모터, 전지, 스피커, 스위치, 릴레이 등 일반부품과 통신 및 파인세라믹부품 분야의 경우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범용장비 중 일부만을 자체 조달해 사용하거나 국산화됐을 뿐 고가 핵심장비의 대부분이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대로 자립 기반을 확보했다는 반도체나 LCD 분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립 및 후공정장비를 제외한 주요 핵심 전공장장비들 대부분이 외산 일색이다. 더욱이 일부 범용 부품장비는 수많은 업체들이 국산화를 추진했다가 도태돼 현재는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핵심부품, 컨트롤러, 설계기술 등 기반 기술력의 취약, 좁은 내수시장, 부품업체들의 맹목적 외산장비 선호의식, 정부의 장비산업 육성정책의 부재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긴 결과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불어닥친 경기 침체와 IMF 한파는 부품 제조 장비에 대한 국내업체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장비구매팀장인 이중용 이사는 『최근 도입되기 시작한 일부 반도체 장비의 경우 최초 도입 가격과 연간 운영비용을 합쳐 1천만달러를 상회할 정도로 장비 도입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소자 생산업체로서의 경쟁력 유지도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다.

결국 향후 국내 부품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세트에서 부품, 그리고 소재 및 장비로 이어지는 형식적인 발전 과정에서 탈피해 이제라도 제조장비 기술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장비업계 관계자들은 『전자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일반 부품이 표면실장(SMD)화 되고, 관련 생산라인이 인라인 시스템화하면서 장비 국산화의 길은 갈수록 어려워져 장비산업을 이대로 방치하면 일부 분야는 멀지않아 고사되고 말 것』으로 우려하며 『정부, 기업, 학교, 연구소 등 각계가 전자산업의 뿌리인 부품산업을 육성하기에 앞서 하부구조인 장비산업에서부터 먼저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