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소설방] 불꽃남자 박대리의 PC통신 탐험기 (11)

대화실 언어폭력배 소탕작전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박 대리님, 저 이 대립니더.』

『아니? 자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하이고마, 속 뒤집어져 못살겠심더. 아, 퍼뜩 통신좀 들어와 보이소.』

주말이라 일찍 집에 귀가한 박 대리가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이 대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왜?』

『어떤 문디시키들이 욕을 해대믄서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아입니꺼.』

『하하, 그래? 간혹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대꾸하지 말고 내버려둬.』

『어데예, 그런 속편한 소리하지 마이소. 지가 암만해도 아이디를 잘몬 만든 것 같습니더.』

『푸하하하, 그러게 누가 「여군 미스 리」라고 만들랬어?』

『그러게 말입니더. 그냥 장난삼아 그랬는데. 그눔아들이 메모를 보내면서 시비를 걸지 뭡니꺼. 이제 절 쫓아다니면서 차마 입에 못담을 소리까지 해대고, 참말로 열불터져 못삽니더. 지는 지금 화산처럼 끓고 있단 말입니더. 도와주이소!』

박 대리는 화가 나서 어쩔줄 몰라하는 이 대리를 위해 별수없다는 듯 5분내로 PC통신에 접속하기로 약속했다.

『##메뉴명 CHAT의 18번 대화실에서 여군 미스 리 회원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PC통신에 접속하자마자 재빨리 박 대리를 초대하는 이 대리. 박 대리는 성질 급한 이 대리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거릴 것을 생각하며 웃음을 띈채 대화실로 들어갔다.

여군미스리:앗, 박 대리님!

불꽃남자:나 왔어, 여군 미스 리.

2C8NUMA:어, 웬 놈이냐?

EC8NOM2:어쭈? 여군 미스 리 기둥서방인가 보군.

여군미스리:야, 임마! 나 남자라구 했잖아!

2C8NUMA:케케- 난 저년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봐!

EC8NOM2:나두 그렇다고 봐! 푸하하, 아니면 호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불꽃남자:입으로 밥을 먹은 게 아니라 똥을 먹었나?

여군미스리:잘한다, 잘한다! 꺄하하∥

EC8NOM2:머얏? 이 쥐똥 만한 노무시키!

불꽃남자:야! 이 망할놈들, 대체 몇살이냐?

2C8NUMA:낄낄, 이 어르신은 올해 19살 자셨다!

불꽃남자:뭐얏? 이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채팅실에서 뭔 짓들이야!

여군미스리:맞아, 맞아! 잘한다! 불꽃남자! 빠샤빠샤!

EC8NOM2:푸하하, 나이먹은 게 자랑이냐?

불꽃남자 박 대리는 대화실 폭력배들의 욕에 화가 치밀었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결국 싸움에 휘말리고 말았다.

옥신각신 몇시간씩 서로 욕을 해대며 싸웠지만 끝이 없고 화만 더 끓을 뿐이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박 대리는 당장 만날 것을 제의했고, 상대방도 만나서 해결하는 것에 동의했다.

한 시간 후, 약속장소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나타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나이 불꽃남자! 그의 옆에는 「여군 미스 리」라는 아이디로 오늘의 표적이 된 이 대리가 잔뜩 단풍든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으니∥. 흡사 그 모습은 콧김을 내뿜는 코뿔소와 같았다고나 할까.

드디어 문제의 대화실 폭력배들이 등장했고 순간 한강시민공원에는 서늘한 긴장이 감돌았다.

『어이, 형씨! 형씨가 불꽃남자요?』

그들의 건방진 말투를 시작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먹을 이용한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불꽃남자 박 대리의 왼쪽 뺨이 퍼렇게 멍들고 녀석들의 눈이 밤탱이가 되었을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진짜 정의의 사도! 때마침 순찰을 돌고 있던 경찰차였다.

사건의 모든 정황을 알게 된 마음씨 좋은 순경아저씨의 이해에 힘입어 훈방조치로 끝난 해프닝의 끝은 시퍼런 멍을 훈장으로 남긴 네명의 사나이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허허, 이거 원. 멍든 곳은 괜찮은가?』

『죄송해요, 아저씨. 대학 떨어지고 화가나다보니 저도 모르게∥』

『모꼬? 모꼬? 아저씨가 모꼬? 그냥 형이라고 하면 안되나?』

남자들의 세계는 정의와 의리의 세계인 법, 흙바닥에 뒹굴며 온몸을 내던져 여군 미스 리를 구한 불꽃남자의 이야기는 PC통신에 널리퍼졌고, 「정의의 남자」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건전한 PC통신을 만들자는 구호와 함께. <황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