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확정된 정부조직개편안은 「작은 정부 구현」이라는 총론적인 부문에서는 일단 합격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조직개편안 확정까지 논란을 벌인 대외통상 담당부서의 경우 신설된 외교통상부에 장관급인 특임 1급 대사가 총괄지휘하는 대외협력본부를 설치함으로써 진통을 마감했다. 신설된 대외협력본부는 기존 공무원 대신 해외활동 경력이 있는 통상 및 국제법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 소수정예화를 추구할 예정이다.
또 과학기술 관련부처의 통합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라 일단 유보됐다. 따라서 한때 교육부와의 통합방안이나 과학기술위원회로의 흡수 등으로 공중분해 위기에 놓여 있던 과기처는 정부 과기정책을 총괄하는 과학기술부로 승격됨으로써 그 위상이 크게 높아지게 됐다.
실제로 과기처는 과학기술부로 승격됨과 함께 정부 부처 서열에서도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보다 2, 3단계 앞서게 됨으로써 이번 조직개편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보통신부 역시 공보처의 방송부문업무의 일부를 흡수함으로써 통신, 방송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문인 만큼 부처 자체가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됨으로써 기능 강화에 따른 반대급부 현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각 부처 및 관련단체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한때 부처해체론까지 나도는 등 살얼음판을 걸었던 과학기술처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 과기처의 부 승격과 함께 부처간 서열에서도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그동안 경쟁관계에 있던 부서보다 앞서자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과학기술처의 위상강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며 잔칫집 분위기.
특히 과기처는 정부조직개편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기획예산실을 신설하면서 부처별 총액예산제를 도입해 사업 우선순위 결정과 세부항목 조정을 장관이 재량권을 갖도록 하고 현 1년 단위의 예산안 편성을 다년제 편성을 도입할 것을 건의하자 그동안의 장애요인이 한방에 해결됐다며 홀가분한 모습.
과기처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 부처의 연구개발계획을 총괄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관의 서열이 높아진 만큼 과기처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각 부처의 내부개편 작업과 함께 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
○∥정통부는 이번 최종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
정통부는 사실 지난해 4, 4분기 이후 정부조직 개편 때문에 상당히 「시달린 편」이었다. 새정부 출범에 맞춰 부처 개편은 필연적이고 이 경우 산업정책 일원화 원칙에 따라 정통부가 여타 부처와 합병되거나 산업 지원부문을 이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 대선 후 조직개편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정통부와 통산부 합병설, 정통부와 과기처 합병설, 심지어 정통부 해체 이관설까지 다양한 설이 등장하기도.
특히 개편안 확정 막바지에는 일부 부처가 산하기관 및 단체 등을 동원, 정통부를 「흔드는」 선전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맞대응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정통부는 현재의 조직과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개편의 회오리를 막아낸 것으로 평가.
현재 정통부가 가장 민감하게 취급하는 것은 기존 공보처가 갖고 있던 방송부문. 최종 개편안에 따르면 정통부는 방송 인허가권을 갖고 추천권은 방송위에 이관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통부 입장에서는 이같은 안이 별다른 진전이 없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으로 평가. 이는 이미 방송 인허가권은 정통부가 보유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 정통부는 방송관련 정책 및 업무가 궁극적으로는 전파를 관장하는 정통부에 의해 조정, 지원돼야 한다는 입장을 숨기기 않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 등급심사 등 소프트웨어적 업무는 방송위원회 혹은 여타 부처가 관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방송이 위성을 비롯, 멀티미디어화하는 대표적 미디어라는 점에서 정통부는 이를 지원할 만한 기술과 정책 노하우,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정부 내 거의 유일한 부처로 손꼽히고 있고 그래서 조직개편안의 국회 통과 후 시행될 방송업무 세부 조정내용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통상관련 업무를 외교통상부로 넘겨주고 산업과 에너지업무만 맡게 된 통산부의 관계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했다』며 크게 낙담하는 모습.
한 통산부 간부는 외교통산부 안에 대해 『산업과 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갈등보다는 우호, 친선을 중시하는 직업외교관들이 첨예한 이해가 걸린 통상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통산부 관리들은 또 『그동안 산업기술정책이 통산부와 과기처, 정통부 등으로 분산돼 있어 효과적인 정책수행이 어려웠다』며 이번 기회에 과기처 및 정통부의 산업기술관련업무를 통산부에서 총괄토록 해 줄 것을 건의한 바 있는데 이것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
○∥최근 통산부와 정통부로 이원화돼 있는 산업정책을 한 부처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입장의 성명을 발표했던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공업협동조합,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 관련단체는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이 산업정책부서를 종전대로 존속시키는 것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실망스럽게 됐다는 반응.
○∥과기처의 부승격과 함께 정부 내에서의 과기처 위상이 높아지자 과총 등 과학기술단체들은 내심 반가움을 나타내면서도 21세기 과학정보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는 반응.
과학기술계는 『김 당선자가 대선 이전부터 강조해온 과학기술위상 강화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며 차기 대통령에 대한 정책신뢰를 보내면서 「긴축재정 하에서도 과학기술 관련예산을 우선 배정하겠다」는 김 당선자의 올해 과학기술계 신년 인사회에서의 발언에 큰 기대를 거는 모습.
○∥정부조직개편과 관련, 과기처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던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최종 조직개편안이 과기처의 위상강화로 나타나자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
출연연 관계자들은 『과학기술 관련부처의 통합은 조직개편심의위 내부에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진작 알았을 것』이라며 『일부 연구소의 주장이 확대해석된 것 같다』고 쓴 웃음.
<정창훈, 이택, 김병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