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소설방] 불꽃남자 박대리의 PC통신 탐험기 (12)

월말이면 심장이 떨리는 이유

박대리는 PC통신을 시작한 이후로 월말만 되면 조마조마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

전화요금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사용시간을 좀 줄이면 될텐데,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다짐을 해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으니 PC통신 이용료에 전화요금까지 합하면 20만원이 넘었다.

이번 1월달도 이런저런 이유로 매번 PC통신에 붙어 살았던터라 사용시간이 무려 160시간!

전화요금은 15만원에 육박할 터이다. 밤마다 잠은 안자고 접속하느라 바빴으니 말이다.

엄청난 전화요금에 놀라는 어머니에게 전화국에서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라며 자기가 알아서 해결할테니 걱정 말라고 거짓말을 해오던 박대리…

그런데 이달에는 이상하게도 고지서가 보이지 않았다. 퇴근시간이면 허겁지겁 귀가하여 요금고지서부터 챙겼던 지금까지의 일들을 기억해보면 틀림없이 도착하고도 남을 일인데 올 것이 안오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박대리는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곁에 서서 넌지시 말을 꺼내었다.

『저어… 엄마, 이달에는 전화요금 고지서가 아직 안왔어요? 이번달에도 잘못 나왔으면 전화국에 연락해서 확인해야 할텐데…』

『밥이나 먹어야~ 내가 죄다 알아서 할팅께!』

그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쿵쾅쿵쾅 요란하게 뛰며 혈압이 강하게 상승하는 박대리!

아뿔싸, 이미 어머니가 챙겼던 것이다.

『그러지 말고 저 주세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내 이 눔들을 당장 요절을 낼껴! 무슨 일을 그 따위로 하는 거얏!』 박대리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늘 당하기만 한다는 둥 투덜투덜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됐어야~ 니가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햐? 알아서 한거시 또 십오마넌씩이나 나와야? 으메… 징한거… 내가 바빠서 아즉 몬가꼬, 낼은 무신 일이 있어두 꼭 찾아가서 결판 낼텡께 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묵어! 사내놈이 되어가꼬 일을 그 따우로 하는 거 보믄… 쯧 쯧. 사장님이 맘씨가 고와서리 때맞춰 봉급주고 그라지, 내 같으믄 어림두 음써야~』

『아이고… 엄마! 이 아들을 그렇게 못 믿으면 누굴 믿을라고 그러세요, 네에?』

『아따, 야가 오늘 와 이리 시끄러운 것이여? 밥이나 처묵으라니께…! 니, 내 아들이지만서도 솔직히 잘난 거 하나두 음땅께~ 사내놈이 월매나 못나 보여쓰믄 전화요금 하나 해결 몬 하고 왔겠냐!』

찍소리도 못하고 궁지에 몰린 박대리의 머릿속은 이제 깜깜 절벽이다. 이 나이에 전화도 마음대로 못쓰고 밥상 앞에서 잔소리라니…. 아아… 빨리 장가를 가야지! 장가가면 마누라에게 큰소리치고 살 수 있을까? 훌쩍~!

다음날,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귀가한 박대리…

그러나 집안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어머니도 예전처럼 저녁준비에만 여념이 없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간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박대리는 평소처럼 PC통신에 접속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게 왠일? 아무리 기다려도 모뎀 특유의 치 지지지직… 띠이이이이, 하는 요란한 신호음은 들리지 않고 발신음이 없다는 모뎀 에러 메시지만이 떴다.

뭔가 이상하게 생각되어 요리조리 컴퓨터를 살피고있을 때였다.

『소용음써야~』

『엄마!』

『내가 오늘 전화국 가서 사정을 들어봉께, 거그 직원이 그라드만? 콤쀼따통신인지 먼지 야그 하믄서, 콤쀼타로 전화를 걸 수 있다 카드만? 그려서 전화요금이 글케 많이 나온다카드라~! 그려서… 내가 망할노무 콤쀼따가 아무데나 전화 몬 걸게 전화선 짤라뿌려따!』

『……』

『세상이 참 무섭고마…! 인간이 맹근 콤쀼따가 전화를 걸구 말이여~! 은젠가는 콤쀼따가 밥두 해머글라 카게뜨만? 암튼 내가 시방 전화선 짤라부렸응께 지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두 전화 못걸거시여~! 급하믄 편지 쓰겄제!』

PC통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연로하신 어머니는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훌륭한 기계」라는 관념에 제 스스로 전화를 여기저기 걸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PC통신은 못하게 되었지만 꾸지람을 듣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에 여유만만한 박 대리…

컴퓨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란 듯이 소리쳤다.

『야, 임마! 앞으로 전화 쓰지맛! 할 말 있으면 편지로 말햇!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