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표된 컴팩컴퓨터와 디지털이퀴프먼트사(DEC)의 인수합병은 예상된 것이기는 하나 컴퓨터업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물론 이들 업체의 합병은 세부협상을 거쳐 2, 4분기 중 최종 매듭지어질 예정이고 이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시장분석가들이나 관련업체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양사의 합병에 따른 파장은 물론 그동안 각자 벌여 왔던 사업들, 특히 디지털의 PC사업과 알파칩 개발 등이 어떻게 조정될지에 대한 전망과 분석으로 떠들썩하다.
이들 분석가는 우선 컴팩의 디지털 인수 이면에는 무엇보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두 승자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한때 세계 최대 유닉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업체 중 하나였던 디지털이 역시 윈텔(MS의 윈도와 인텔을 합쳐 이르는 말)시스템의 최대업체인 컴팩의 자회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의미 외에도 이제는 세계에서 윈도NT 공인전문가를 가장 많이 확보, 컨설팅 서비스부분에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는 디지털과 컴팩이 결합함으로써 윈텔시스템을 보다 확실히 떠받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인 IDC의 한 분석가가 『컴팩이 이번 인수로 얻은 진짜 자산은 디지털의 「멀티벤더 커스터머 서비스(MCS)」부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디지털의 서비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수준이다. MCS는 현재 1천6백여명의 윈도NT 공인 엔지니어들을 보유, NT관련 업계 최대의 컨설팅 통합조직으로 IBM 및 휴렛패커드(HP)의 서비스 사업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다시 말해 양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는 윈도NT를 기반으로 엔터프라이즈 컴퓨팅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듦으로써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윈텔의 경쟁업체들을 더욱 힘겹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MS로서는 윈도 플랫폼에서 자신의 든든한 지지자인 컴팩이 역시 최근 윈도NT분야를 대폭 강화해 온 디지털을 인수한 사실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와 함께 인텔이야말로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내년 발표될 차세대 64비트 프로세서 「메르세드」와 관련, 디지털이 메르세드를 지원하고 있고 컴팩 또한 전통적인 인텔 아키텍처 지원세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로웬바움&컴퍼니의 한 반도체 분석가는 새로운 세대의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는 이전 세대의 2, 3배 되는 비용이 든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반도체업체에서 「규모의 경제」가 더욱 중요해져 가고 있으며 그동안 대형 컴퓨터업체들로부터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아 왔던 인텔이 컴팩, 디지털의 통합으로 더 큰 힘을 얻게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알파칩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무엇보다 높다. 물론 컴팩의 에커드 파이퍼 회장이 64비트 알파칩 아키텍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당분간 알파칩의 연구개발이 활기를 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디지털이 지난해 11월 인텔과의 특허분쟁 조정과정에서 자사 알파칩 제조라인을 인텔에 매각하는 한편 「메르세드」IA-64를 차세대 아키텍처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알파칩의 수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어차피 내년에 메르세드가 나오면 다른 64비트 플랫폼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돼 알파칩 플랫폼은 수명이야 이어가겠지만 더 이상 주력분야가 되지는 못할 것이란 주장도 우세하다. 나아가 이번 합병은 알파칩의 사망을 앞당길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로선 이같은 조치와는 별도로 알파칩에 대한 개발을 더욱 강력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긴 했으나 결국 컴팩이 알파칩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느냐에 따라 알파칩의 운명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편으론 컴팩이 하이엔드 컴퓨팅분야에서 알파시스템의 강력한 성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알파칩을 계속 지원할 것이란 주장도 만만찮다.
이들은 무엇보다 에커드 파이퍼 회장이 알파 아키텍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고 디지털의 로버트 팔머 회장도 알파칩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다고 말한 데서 희망의 단초를 찾고 있다.
또한 메르세드가 나와 이 64비트 아키텍처가 깐깐한 하이엔드분야의 고객들로부터 기술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컴팩-디지털 진영으로서는 알파시스템이 여전히 중요한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알파칩의 운명이 내년에 메르세드의 탄생으로 새로운 갈림길에 놓이게 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한편 디지털의 기존 사업들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이에 대해 디지털의 브루스 클래플린 수석부사장은 『양사의 최고제품을 골라내 내년께나 통합된 제품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특히 디지털의 초박형 노트북PC인 「하이노트」의 경우 컴팩이 아직 초박형제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앞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아무튼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컴팩과 중복되는 디지털의 사업은 어떻게든 정리, 통합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유력하다.
컴팩이 최대의 인텔 데스크톱, 노트북, PC서버업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컴팩의 이번 인수가 디지털의 컨설팅서비스와 하이엔드 알파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디지털의 PC사업은 우선적인 정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