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시인 존 밀턴이 쓴 불멸의 역작 「실락원(失樂園)」은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실락원」은 출세가도를 달리다 한직으로 밀려난 50대 출판사 간부와 미모의 30대 의사부인이 도덕적 굴레를 벗어 던지고 불같은 애정극을 벌이다 결국 눈덮인 시골산장에서 동반자살한다는 통속소설이다. 장르나 소재는 다르지만 인기를 끈 것은 똑같다.
와타나베의 「실락원」은 지난해 일본열도에 「실락원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출판부문 베스트셀러 1위는 물론 닛케이비즈니스가 모든 상품을 망라해 선정한 「히트상품 베스트30」의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영화로 제작돼 대히트를 하자 관광업계가 소설에 등장하는 「불륜의 코스」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발빠른 상혼을 보이기도 했다.
불륜주제 소설 가운데 유독 「실낙원」이 사회현상화할 정도로 붐을 일으킨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이 버블경기 붕괴와 리스트럭처링, 불황, 관료부패 등 꽉 막힌 오늘날 일본의 분위기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일본의 경제불황과 중년층이 처한 고용불안에 따른 심리적 불안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이 소설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에는 이른바 「실낙원(室樂園)형」소비가 늘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주로 산다는 것이다. 가정용 게임기, 마사지 의자, TV 등을 누워서 볼 때 필요한 베개, 정원가꾸기 도구 등이 그것으로 이들 실낙원형 상품은 비싼 데도 잘 팔리고 있다. 또 유선TV 수신자도 크게 늘어나고 욕탕 개조 붐도 일고 있다는 것. 거품경기 붕괴 후 일본인의 의식구조 변화가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인들의 귀가시간이 빨라져 비용이 많이드는 바깥형 오락에서 집안에서 가능한 즐기려는 욕구가 매우 강해진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바깥형 소비가 줄고 있다. 내수부진으로 고민하는 전자업계도 이러한 「실낙원형」 제품 개발이 바로 IMF파고를 헤쳐나가는 방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