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17);결제방식

중소부품업체들로부터 제품을 구매해가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한달에 한번 또는 두번 납품대금을 현금 또는 어음으로 결제해주고 있으며 이때 지급되는 어음은 대부분 60일에서 90일이 지급만기일이다.

이 정도의 상거래는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상식적인 결제방식이다.

그런데 왜 중소업계와 금융관계자들은 이를두고 「전근대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문제는 거래당사자들이 수평적 관계가 아닌 종속적 관계이며 때문에 어음발행이 남발되고 지급기일도 고무줄처럼 늘어나는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이상수과장은 『국내에서 하루에 발행되는 어음액수가 20조원으로 총통화의 70%에 이르며 중소기업들의 69%가 납품에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 즉 10개업체중 7개 업체는 납품대상업체외에는 별도의 판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대부분 중소업체들은 거래처에서 아무리 부당한 거래조건을 요구하더라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만하는 입장이다.

어음지급기일도 대부분 거래상대방의 편의에따라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게 보통이다.

회사 사정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어음으로 결제를 받는 중소부품업체들은 자금난 때문에 어쩔수 없이 시중에서 어음을 할인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그러나 어음할인율은 20%이상이며 심지어 사채시장에서 50%를 웃도는 경우도 많다. 3개월후면 1억원인 어음을 현금으로 할인하면 최고 8천만원 미만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나마 배서를 통해 지급보증을 해주어야만 한다.

중소부품업체들은 어음을 발행한 거래회사가 부도날 경우 변제책임까지 지고서 한번 결제할때마다 대금 결제액에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 꼴이다.

그러면 중소부품업체들이 어음거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제수단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중소기업연구소 홍순영박사는 『일부에서는 어음제도의 폐지나 현금결제 의무화를 거론하기도 하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결제방식은 어디까지나 거래쌍방간의 계약사항이기 때문에 제도나 행정으로 강제할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라는 견해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중소업체들이 거래상대방과 종속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어 동등한 입장에서는 현금지급 비율이나 어음지급 기일등 결제수단을 상호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합의해내는 길밖에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속시원한 개선책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은 중소기업보호를 위해 대기업들이 공정한 거래관행을 유지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을 기대하고 공정거래법에 명시돼있는 조항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질수 있도록 정부나 관계기관이 감시감독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관계자들은 그러나 결제수단의 개선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으며 현재 진행중인 금융구조 개편,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및 투명성 제고, 대기업과 납품업체간 수평적 협력관계구축 등 전반적인 경제구조 개혁과 맞물려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해법이 찾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