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20.끝);선입견

『국산 부품이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국내 세트업체들의 고질적인 편견 탓에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것이 품질이나 기술력은 물론이고 지명도를 높이는 데 큰 보탬이 됐습니다.』

적층칩 세라믹 컨덴서(MLCC), 칩 비드 등을 개발했던 한 국내 부품업체 사장은 판로를 개척하다보니 수출이 먼저, 그 다음이 내수라는 현실에 씁쓰레 했다. 해외 부품과 비교해 동등한 품질,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세트업체들은 국산 부품이라는 이유로 채용하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이 회사가 택한 방법은 수출을 바탕으로 해외로부터 지명도를 얻은 다음 내수를 공략하는 우회전략. 『해외 어느업체에서 이 부품을 사용중이다』고 말을 꺼내자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국산 부품 채용 과정을 소개했다.

그동안 국내 세트업체들은 국내 전자제품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부품 국산화가 필수적이라고 한입으로 외쳐왔다. 국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의 7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부품업체들이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르다.

우선 구매부서에서는 국내 부품업체에게 해외제품과 동등한 품질, 저렴한 가격, 그리고 해외 시장에서의 채용여부를 국산 부품 채용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외 부품과 비교해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또 일선 개발부서에서는 해외부품과 완벽한 호환성을 요구하고 있다. 제품의 규격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설계 변경이나 수정을 가해야 하는 데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밖으로는 부품국산화를 외치면서 행동은 부품국산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세트업체들의 관행때문에 부품업체들은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은 하나둘씩 쓰러져 간것이 국내 부품산업의 현실.

대기업 부품업체들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부품업체들이 개발하는 품목은 장기간의 개발기간과 막대한 투자비가 요구되는 첨단 부품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투자비용때문에 초기 생산시에는 가격은 해외부품에 비해 조금 비싸거나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업체가 부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해외부품업체는 공급가격을 낮추게 되고 결국 가격차는 더 벌어져 채 생산하기도 전에 사장되는 예가 종종 있다. 국내 세트업체가 해외부품업체의 가격전략에 넘어가는 경우다. 국내 부품업체가 사업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해외부품업체들은 슬그머니 가격을 다시 환원하고 국내 세트업체들은 다시 해외업체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부품산업은 고집적화되고 고난도 기술이 요구돼 전자산업의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제품에서 핵심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졌으며 세트업체의 개발비중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또 부품기술이 향후 전자제품의 개발방향을 선도하고 있어 부품기술을 갖추지 못한 세트업체는 신 제품 개발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부품국산화는 부품업체뿐 아니라 세트업체 양자가 함께 노력해야만 가능하다』라며 『당장의 손익만을 계산하는 관행으로는 부품국산화의 길은 요원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국내 부품업체가 바라는 것은 해외부품업체와 동등한 잣대로 평가해 달라는 것』이라며 『국산부품은 저렴한 가격, 국내 부품업체는 세트업체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기존 사고를 버릴때 부품국산화라는 구호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