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디지털 "안방극장" TV혁명은 시작됐다 (4)

지난 96년말 미국이 지상파 디지털방송 규격을 확정하기까지는 무려 10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됐다.디지털방송 규격 설정을 놓고 이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한마디로 컴퓨터, 통신, 반도체 등 전자산업을 이끌고 있는 핵심분야에서 기술혁명이 가속화했을 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라는 개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티미디어의 한가운데는 디지털기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러한 돌출 변수는 획기적인 고화질, 고음질을 지상목표로 삼았던 차세대 TV에 대한 패러다임 논쟁을 원점으로 돌려놓았고 TV를 단순한 수상기에서 가정용 정보터미널로 변환하기 위한 시도들이 구체화했다.

TV가 정보터미널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디지털기술과 정보처리, 네트워킹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컴퓨터업계에 디지털TV시장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컴팩과 인텔이 개발한 PC시어터, 게이트웨이 2000사의 PCTV,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웹TV,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오라클의 네트워크 컴퓨터(NC) 등은 가정용 멀티미디어시장에 대한 컴퓨터업계의 야심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급기야 96년초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컴팩진영은 PC에 기반을 둔 디지털TV 규격을 제안하고 방송계가 이 규격을 지지해주도록 대대적인 로비를 펴기까지 했다. 컴퓨터업계의 공세로 인해 입장이 난처해진 미국 정부는 결과적으로 비디오 포맷 등 쟁점이 된 부문에서는 가전과 컴퓨터업계의 입장을 모두 수용한 디지털TV 방송규격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지난해말 미국의 인텔은 PC에 입각한 디지털TV를 고수하겠다는 종전의 입장을 철회했다. 그 이유는 신규설비 투자에 부담을 느낀 방송계가 컴퓨터업계의 디지털TV방식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 포맷 등을 자유롭게 변환할 수 있는 신기술들이 속속 등장해 하드웨어적인 규격에 집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텔의 입장 선회가 컴퓨터업계의 디지털TV시장에 대한 관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디지털TV가 궁극적으로 양방향 멀티미디어로 정착될 것이라는 신념은 확고하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로서의 디지털TV는 마이크로프로세서(MPU)칩과 윈도우CE 같은 가전용 운용체계(OS)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컴퓨터업계가 디지털TV시장의 노른자를 차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비영상정보처리나 네트워크분야에서의 강점을 이용해 새로운 개념의 부가서비스를 주도할 수 있는 저력도 충분하다.

디지털TV의 멀티미디어화는 가전업계와 컴퓨터업계의 기술 및 전략적 제휴가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필립스, 소니와 제휴해 웹TV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선, 오라클 등이 제니스와 톰슨RCA를 파트너로 삼아 인터넷TV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TV시장은 가전도 컴퓨터업계도 아닌 새로 태동하고 있는 「정보가전업계」의 윤곽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디지털TV시장 역시 정보가전시장의 하나로 아직까지는 누구도 기선을 제압하는 절대강자의 확실한 위치에 서 있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