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루퍼트 머독

지난 96년 3월 어느날, 독일의 한 유명 일간지에 독일방송사인 버텔스만사의 돈 만 상무에 관한 기사가 크게 실렸다. 개인의 기사를 크게 다루지 않는 독일언론의 속성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사의 내용은 돈 만이 유럽의 디지털TV시장 진출을 위해 유럽의 최대 TV방송업체인 벨기에 CLT사와 협력을 추진 중인 루퍼트 머독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의 유럽진출을 막고 자신의 버텔스만사와 경쟁업체인 CLT사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기사는 돈 만이 야심과 능력은 있으나 상 도의를 모르는 방송인이라는 지적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미디어업계를 장악하려는 욕심많은 머독에게 본때(?)를 보여 주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미디어황제」 「세계의 언론제왕」 등으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 그는 22살 때 호주의 조그마한 지방신문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아 짧은 기간에 세계의 유명신문과 방송을 인수, 합병(M&A)하면서 일약 미디어제국의 황제로 등극했다. 85년 미국의 20세기폭스사를 사들이고 TV를 소유하기 위해 호주국적을 버리고 미국시민권을 취득할 정도로 미디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그 결과 머독은 현재 미국의 20세기폭스와 커낼폭스, 뉴욕포스트, 영국의 더타임스, 더선, 브리티시스카이브로드캐스팅, 독일의 폭스, 홍콩의 스타TV, 호주의 폭스텔 등 세계적으로 굵직굵직한 신문과 방송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신문, TV, 영화, 잡지 등 모든 미디어 분야에서 화려한 M&A를 계속하고 있다.

머독은 분명 미국 CNN의 테드 터너와 함께 세계 미디어업계를 이끌어 가는 거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언론산업계의 이같은 수많은 찬사 못지않게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하루의 수면시간이 4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벌레로 소문난 머독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매체는 어떻게 하든지 손에 넣고 마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일부 언론은 경쟁회사를 먹어치워야 적성이 직성이 풀리는 사업 스타일의 소유자라는 뜻에서 「미디어계의 식인상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사업적으로 승산이 없는 곳에서는 가차없이 손을 떼는 냉철한 사람이기도 하다.

머독은 지난 96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과 손을 잡고 일본의 TV아사히의 지분을 취득했으나 아사히측이 경영참여를 완강히 거부하자 주식을 즉시 되팔아버렸다. 미디어 경영에 있어서 그의 의사결정은 상당히 신속하다.

이러한 점에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최근 데이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리나라에 75채널의 위성방송을 실시키로 한 것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