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바야흐로 매체범람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상파를 비롯해 위성방송과 유선방송, 인터넷 방송, 비디오, LD, CD, DVD 등 엔드유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체의 혼란기라 할 만큼 정보의 전달수단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매체의 다양화에 따른 파급효과, 특히 국내의 경제,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매체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콘텐츠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며 시대 흐름에 따라 콘텐츠가 가지는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매체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깊이 파고들었을 때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는 단연코 양질의 콘텐츠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곳, 즉 외국 기업들일 것이다. 국내 콘텐츠 보유사들은 다가오는 다매체시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국내 영화제작사들은 DVD가 무엇인지, 자신들이 보유한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무감각한 채 필름을 방치해두고 있다. 필자는 최근 국내의 모영화 DVD타이틀을 보고 화면상에 나타나는 노이즈가 원본필름에 묻은 먼지라는 것을 DVD제작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말 한마디가 국내 환경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대기업들은 어떠한가. 비디오시장과 비디오CD에서 보여주었듯이 매체가 늘어날수록 자사의 수익을 위해 외국 콘텐츠 수입에 열을 올릴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정부를 보자. 정부의 경우 국내의 멀티미디어에 큰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도 하드웨어 편향적으로 다만 가시적인 하드웨어 수출과 개발에 대한 배려일 뿐이다.
다매체시대에 살며 이러한 매체마다의 특성을 살리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산업의 경우 내수시장만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움은 이미 여러 신문과 잡지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연예계는 제대로 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 최근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함에 있어 몇천만원, 심지어는 억대를 초과하는 비용을 들이는 것을 볼 때, 과연 국내 시장만을 타깃으로 한 이러한 뮤직비디오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는 바야흐로 세계화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됐다. 애니메이션은 전세계를 겨냥한 캐릭터와 전세계를 배경으로 한 기획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연예인들의 뮤직비디오 또한 문화수출로 연계돼야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의 세계화가 어떠한 산업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하나 핵심기술은 모두 일본의 것이며, 여기에 필요한 화학제품 역시 전량 일본에서 수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수주량 1위라고 하나 배를 수출해 생기는 수익도, TV를 수출해 생기는 수익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할 때 유명한 필름의 판권을 통해 생기는 수익이나 캐릭터 라이선스 수익, 비디오 게임 판매수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국내의 DVD시장은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DVD타이틀 하나가 바로 영화 「벤허」다. 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MGM이 제작한 이 영화는 40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한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머독이 데이콤과 손을 잡고 위성방송에 뛰어드는 이 때에 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밀려올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에 대한 대비가 없는 한 수많은 외화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 문화적 종속국이 되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는 아닐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매체의 한계를 극복해 오랜 생명력을 가지게 마련이며,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고 세계를 대상으로 콘텐츠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모두의 의식 개혁과 더불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이며 체계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정책이 요망된다.
<손동수 게이브미디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