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김어준 플라넷 사장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보느라 온 국민이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난 다음날 한 젊은이가 올린 글이 PC통신 게시판을 뒤흔들었다.

「경상도 문등이가 전라도 깽깽이에게」라는 제목의 그 글은 이제 전라도 사람들이 17년의 한을 풀고 DJ의 철저한 비판자가 되어 그가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금방 조회 수가 수천건으로 올라갔고 언론에 보도될 만큼 PC통신 게시판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루에 쏟아진 격려메일만도 1백여통이나 됐다.

이글의 주인공은 권현문씨와 함께 천리안의 초대 왕입담으로 선정된 김어준(31)씨. 콘텐츠 제공업체인 플라넷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게시판에 하루에 2, 3개씩의 글을 올린다. 한번 올리는 글의 분량은 10∼20여쪽. 웬만한 사람들은 읽는 것도 부담스러운 양이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에요. 글쓰는 것도 말하는 것처럼 하면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신문을 보거나 밥을 먹다가도 뭔가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나면 컴퓨터 앞에 앉지요. 타자 치는 속도도 남다른 편이라 별로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지요.』

오히려 김 사장이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은 글을 보고 날아드는 메일에 대해 답장을 하는 일 때문이다. 그에게 날아드는 메일의 수는 평균 보름에 1백여통.

대부분 김 사장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격려성 메일이지만 때로는 질시의 시선도 있다. 특히 왕입담으로 선정된 이후에는 「괜히 튀어 보여서 책내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메일도 가끔 온다고 한다.

『솔직히 무슨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쁘죠. 저한테 PC통신의 게시판은 분출구 같은 겁니다. 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면 뭔가 답답했던 것이 좀 해소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살다보면 사회나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지 않습니까』

김사장의 글은 솔직하다. 어려운 말로 논리를 전개하지도 어설픈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그 나이에는 얻기 힘든 그만의 독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력은 한마디로 복잡하다. 홍익대 전자공학과 시절에는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배낭여행에 심취해 온 세계를 안다녀 본 곳 없이 돌아다녔다. 그것도 거의 부모님의 도움 없이. 11번의 유럽여행을 비롯해 중동, 동남아 동유럽, 북아프리카 그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을 세는 것이 오히려 빠를 정도.

지난 96년 SEK전시회에서는 트라이콤사의 이벤트를 맡아 베스트부스로 선정되는 행운을 안았고 케이블TV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시나리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또 삼성그룹의 지원을 받아 해외입양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했다. 지금은 넷츠고를 통해 배낭여행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PC통신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다른 왕입담들과 함께 사이버잡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웹진이라는 게 많이 있긴 하지만 기존의 활자책을 그대로 옮겨놓거나 몇몇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전문지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사이버의 특성을 살리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뭔가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김사장이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활약이 기대된다.

<장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