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창조] 베리텍

국내에서 가장 먼저 레이저프린터(LBP)사업에 뛰어들어 외국기업인 HP와 수위다툼을 벌여온 기업으로 큐닉스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프린터 단일품목으로 1천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려 당당히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이 회사도 그러나 지난해 말 불어닥친 IMF한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체엔진을 개발해 세계적인 프린터 메이커로 올라서려던 야심찬 꿈을 펼치기 바로 직전에 무너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의 불행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최근 큐닉스컴퓨터가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기업은 큐닉스 출신들이 다시 똘똘 뭉쳐 벤처기업으로 새 출발한 베리텍(대표 남무현).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고객지원(AS), 제조파트에서 근무했던 20명의 소수정예로 출발했지만 남 사장을 포함한 전직원들은 자신감에 가득차 있다.

비록 회사규모는 작지만 LBP분야에서 기술개발 경력이 5년 이상된 베테랑 엔지니어들이 무려 8명이나 포진하고 있어 언제든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데다 옛 동지였던 전국 유통 및 AS채널들이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자심감을 바탕으로 지난달 19일 회사를 설립하고 1개월 가량 물밑작업을 전개해온 베리텍은 내달 15일께 자체 개발, 생산한 A3용 컬러프린터와 2종의 흑백프린터 등 레이저프린터 3개 모델을 앞세워 과거 자신들이 몸담았던 큐닉스컴퓨터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경쟁사들처럼 대량 생산체제를 갖출 수 없기 때문에 OA시장을 주 타겟으로 고성능 레이저프린터에만 주력할 방침입니다.』

큐닉스컴퓨터와 제일정밀의 잇단 침몰로 프린터시장이 혼미상태에 빠져 있다. 공급이 크게 부족한데다 환율인상으로 업체들이 앞다퉈 제품값을 대폭 인상한 탓이다. 특히 업무용 레이저프린터의 경우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던 큐닉스제품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큐닉스제품을 선호했던 많은 고객들이 제품선택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따라서 OA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던 기존 큐닉스 모델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 베리텍제품을 앞세워 틈새시장부터 차츰차츰 공략해 나간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게 남 사장의 생각이다.

실제로 최근 IMF한파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은 대신 그 숫자만큼의 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생겼났다. 비지니스의 필수장비는 컴퓨터와 프린터. 따라서 하반기 이후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업무용 레이저프린터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베리텍측은 확신하고 있다.

『문제는 자금력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확실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적지않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0년이상 레이저프린터 연구개발에 몰두해온 남 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연구개발 실적들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요즘 투자가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해 투자를 유치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않다고 토로한다.

그렇지만 남 사장은 전혀 부담이 없다. 다음달에 자신들의 첫 제품이 출시되면 투자가들의 신뢰감이 높아져 창투사를 비롯해 많은 벤처투자가들이 몰려올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남 사장은 『차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업무용 레이저프린터 시장에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져나간다면 제2의 큐닉스신화를 창조해 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굳은 의지를 엿보이고 있다.

<김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