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님이의 일기 (하)
박대리와 이대리는 꽃님이의 소식이 궁금하여 매일 그 아이의 일기가 있는 게시판을 열람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꽃님이를 돕자는 의견이 분분하기 시작했다.
PC통신의 위력이었다. 꽃님이의 사연은 빠른 속도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곧 몇몇 사람들을 주축으로 꽃님이를 돕자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우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병원비와 꽃님이의 입학금을 모금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일인당 만원씩만 모금하자며 거국적인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우리도 함께 돕는 것이 어때?』
『그래! 돈 만원에 죽고 사는 것도 아니고…』
이대리는 함께 돕자는 불꽃남자 박대리의 의견에 동의하며 멋쩍게 씨익 웃었다.
『무슨 일이야? 돈 만원에 죽고 살다니?』
대머리 상무님이었다. 상무님은 이대리와 박대리가 컴퓨터 앞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언뜻 듣고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건네왔다. 불꽃남자 박대리는 그간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대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무님은 꽃님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세상에…정말 딱하구먼! IMF가 남자들의 어깨만 짓뭉개는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까지 주고 있어. 어서 빨리 이 경제가 신탁통치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말야… 쯧쯧.』
『그래서 저희들도 조금 보태려고 합니다. 만원이면 부담되는 것도 아니고해서요.』
『하하, 그래? 역시 불꽃남자 박대리는 정의의 사나이구먼? PC통신에 그렇게 소문났다면서? 하하하…』
박대리는 대머리 상무님이 자신을 정의의 사나이라고 부르자 겸연쩍은 마음에 뒷머리까지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 좋은 일이니 도와야지!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른 일이야. 나도 한몫 할 수 있을까?』
『네에? 상무님께서요?』
이대리와 박대리의 놀라는 모습에 대머리 상무님은 더욱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지갑을 꺼냈다.
상무님이 불꽃남자 박대리의 앞에 내민 것은 10만원권 수표 한 장이었다.
『하하, 이건 내 비상금이야. 요즘 같은 IMF 시대에는 비상금이 절실할 때이지. 하지만 괜찮아. 조금씩 절약해서 모으면 또 금방 만들 수 있어. 마누라가 모르는 돈이니까 바가지 긁힐 염려도 없고, 또 마누라가 안다고 해도 잘했다고 할게야. 알고 보면 우리 마누라 무척 잔정이 많거든. 하하하…』
대머리 상무님은 불꽃남자의 손에 수표를 쥐어주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대리와 박대리는 상무님의 새로운 모습에 감동하고 있었다.
일주일후, 꽤 많은 액수의 성금이 모아졌고 모임을 주최한 몇몇 사람들의 손에 의해 전달되어졌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네티즌들의 따스한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것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대리와 박대리는 몇일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를 읽고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가짜라니? 꽃님이가 가짜였단 말야? 이럴 수가!』
전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며 진행되었던 꽃님이의 일기는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모금된 성금을 아버지의 병간호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왔다는 대학생인 사촌 오빠와 꽃님이에게 전달했었다.
그러나 성금을 전달하고도 꽃님이의 소식이 궁금했던 네티즌들은 아버지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고 그곳에 그런 환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꽃님이는 실제 인물이긴 하지만 부모가 사업 실패로 자살극을 벌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방학을 맞은 꽃님이의 사촌 오빠가 IMF시대에 용돈이 궁해지자 네티즌들의 단합력을 이용하여 꽃님이의 ID를 빌어 이런 사기극을 벌인 결과였다.
『쓰벌~ 잘 헌다. 어른들은 어떡해든 위기를 넘겨보자고 허리띠를 졸래 매는데, 어린 것들은 유흥비 마련해서 놀러 댕길 궁리나 하고 있구…』
『바바바바… 박 대리! 그게 문제가 아냐! 이이이이… 이…이젠 어떡하지?』
이대리는 말까지 더듬이며 박대리를 근심스레 바라보았다. 그러나 박대리는 짜증만 더해질 뿐이었다.
『으이, 뭘 어떡해!』
『대대대대… 대머리 상무님 아시면 기절하실텐데…』
『헉! 그래! 만원도 아니고 10만원씩이나 주셨는데…! 이젠 우린 죽었어! 으아아아아! 이를 어떡하나!』
그때였다. 대머리 상무님의 청천 벽력같은 호통소리가 사무실로 날라든 것은!
『박 대리!! 이대리! 이 멍청한 인간들 어디있엇!! 나왓! 나와아아앗!!!』
<황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