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계 PC업계는 세력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PC아키텍처를 개방(오픈)하고 사분오열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PC사용자들은 이런 개방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는 PC기술의 변화추세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언제까지나 개방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었던 PC표준이 특정 메이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95년 미국 인텔사가 최초의 P6급 프로세서인 펜티엄프로를 발표한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인텔은 펜티엄프로를 선보이면서 마더보드에 접속하기 위한 새로운 인터페이스, 즉 「소켓8」을 등장시켰다. 소켓8은 핀수가 3백87핀으로 그 무렵까지 인텔의 펜티엄과 AMD의 K5 및 K6, 사이릭스의 6x86 및 6x86MX등 P5급 프로세서에 사용되던 2백96핀의 소켓7과는 전혀 호환이 되지 않았다.
이어 인텔은 작년 5월 새로운 P6급 프로세서인 펜티엄Ⅱ와 함께 새로운 CPU인터페이스인 「슬롯1」을 발표했다. 전기적(電氣的)으로 「슬롯1」은 「소켓8」과 동일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는 「슬롯1」은 과거의 표준과는 큰 차이가 있다. 펜티엄Ⅱ는 작은 플라스틱 패키지에 넣은, 지금까지의 CPU와 달리 「SEC(Single Edge Contact) 카트리지」라 불리는 훨씬 큰 캐리어에 담겨 있다.
사용자는 펜티엄Ⅱ를 이 형태로 밖에 구입할 수 없다. SEC카트리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더보드 상에 2백42접점을 가진 「슬롯1」이 없으면 안된다. 더군다나 인텔은 98년 중반에 또다른 펜티엄Ⅱ프로세서(코드명 데슈츠)와 데스크톱시스템용 인터페이스인 「슬롯2」를 발표할 에정이다.
인텔의 이같은 칩 전략은 호환칩 메이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새로운 소켓과 슬롯은 모두 인텔의 「전용」기술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강력한 특허로 보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텔호환칩 메이커뿐만 아니라 세계 PC업계 역시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PC업계는 경쟁하는 가운데 발전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PC는 호환기종의 존재를 허용한 후, 재차 「전용」으로 돌아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매킨토시의 선례를 따른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