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섹이 뭐길래?
오늘은 야근하는 날! 그런데 아까부터 후배사원 맹진국씨의 움직임이 뭔가 석연치 않다. 박 대리 앞에서 알짱알짱대며, 흘깃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다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혼자 낄낄거리기까지 하는 것이 어쩐지 수상쩍었다.
「혹시, 뉴스에 반도체 기밀 유출사건이 나왔는데 맹진국씨가 나에게서 연구 기록을? 아냐아냐, 그럴 리가 있나. 흐음, 그런데 왜 저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궁뎅이를 흔들며 왔다갔다 하는 거지?」
뭔가 살벌한 긴장감까지 감도는 것을 느끼며 맹진국씨의 행동에는 아랑곳없이 일하는 척 컴퓨터 키보드에 고개를 처박았다.
얼마쯤 흘렀을까? 이젠 갔겠지, 싶어 고개를 든 순간, 아뿔싸 맹진국씨가 바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 대리님! 뭐 하십니꺼?』
『헉! 자자자자, 자네는 대체 뭐뭐뭐, 뭘 감시하는 건가?』
맹진국씨는 대답 대신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박 대리의 컴퓨터 모니터만을 곁눈질하고 했다.
『이 뭐꼬? 암것도 없네?』
맹진국씨는 실망스럽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어이쿠, 이런. 역시 맹진국씨는 나에게서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기술을 빼내려던 것이었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박 대리는 태연을 가장하기 위해 헛기침까지 하며 은근 슬쩍 맹진국씨를 떠보기로 했다.
『뭐가 없어? 뭘 찾는 건데?』
『하이고, 박 대리님은 얼마전에 뉴스도 못봤는교?』
『뭔 뉴스? 아아, 그 산업스파이 뉴스 말인가?』
박 대리는 「산업스파이」라는 말을 툭 던져놓고는 맹진국씨의 눈치를 살폈다. 보나마나 화들짝 놀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웬 산업스파이? 거참, 박 대리님도 씰데 없는 생각은 잘하시네예. 그기 아니고요, 왜 있잖십니꺼? 컴섹이인가 뭔가, 요즘 그기 한창 유행이라 안캅니꺼?』
컴섹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박 대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컴섹이 뭐야?』
『음마야? 박 대리님은 내숭이 18단이네예. 컴섹 모르십니꺼? 컴퓨터 잡고 응응응∥ 헉헉거리는 기 컴섹이지 뭐겠습니꺼.』
컴퓨터 잡고 응응? 박 대리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맹진국씨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나서야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각, 컴퓨터 앞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박 대리가 요즘 유행이라는 컴섹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맹진국씨는 몰래 엿보려 했던 것이었다.
실망한 맹진국씨가 돌아갔지만, 컴섹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한 박 대리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모름지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겠다?
능숙하게 컴퓨터에 접속하는 박 대리, 맹진국씨에게서 들은대로 컴섹이 성행하고 있다는 성인클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성인들만의 대화실이 24시간 열려 있었다.
<메모:야화>불꽃남자님, 나 오늘 한가해요.
난생처음 보는 「야화」라는 여자의 메모에 당황한 박 대리는 뭐라고 대꾸조차 못하고 멀뚱멀뚱 출력되는 메모만 바라보았다.
<야화>서울. 독신녀. 28세.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지 않으세요?
뜨거운 밤이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란 박 대리,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그녀와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라고 해야 뭐 뻔한 것, 맹진국씨가 말한대로 「컴퓨터 붙잡고 응응응」이었으니 그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달콤함에 빠지면 그 누구도 헤어나지 못하는 법, 그날 이후 매일 밤 컴퓨터와 씨름하던 박 대리에게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PC통신에 접속하려던 박 대리의 아이디 「불꽃남자」가 정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 메시지와 함께.
<귀하의 아이디는 PC통신 대화방에서의 폭력성 대화 및 음란대화로 신고가 접수되어 오늘부터 사용이 불가능하오니, 이의 있으시면 고객상담실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무엇하랴. 이쯤에서 PC통신에서의 불꽃남자 신화가 끝나고 있었으니, 이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박 대리 스스로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한번 실수를 두번 반복해서는 안되는 법! 뼈를 깎는 반성을 거듭한 박 대리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짐한다. 앞으로는 건전한 정보문화의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황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