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구 CAS 사장
역사는 흐른다. 수많은 굴곡과 기복을 담고 장강처럼 흐른다. 범람 같은 대환란이 때때로 엄습하고 풍요를 구가하는 태평성대가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다.
1백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는 「청나라」라는 대국을 상대하여 배우고 가르치며 또 교환했다. 조선의 교역에서 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유사 이래 한반도는 지리적으로나 문물의 흡수에서나 항상 중원을 바라보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륙은 때로는 목표였으며 또한 젓줄이기도 했다.
한편 반도에서 저작(咀嚼)된 문물은 일본열도로 흘러갔고 그것은 누누히 저열한 일본문화를 각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일본제국주의가 조선반도를 넘보기 시작하고 드디어 강점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강한 무력을 동원한 그들은 아주 짧은 기간에 문물이 흐르는 방향을 뒤바꿔 놓기 시작했다. 어느 새 한반도는 서북쪽 대륙이 아닌 동쪽 바다 건너 일본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자연의 법칙처럼 문물도 위치에너지가 높은 쪽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분단 이후,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과 함께 지리적으로도 연결이 끊어진 중국과의 교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반도의 관심은 일본을 넘어 미국까지 더욱더 동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인 중국은 우리 관심 밖에 있었을 뿐 살아 있었고 아주 느린 속도로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 사이 미국과 일본은 꾸준히 막대한 중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정치적 역량을 동원하고 자본을 투자하고 정보를 축적해 왔다. 불행히도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우리는 코 끝에 붙어 있는 붉은 중국의 냄새조차도 제대로 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맹방인 대만을 모욕적으로 버려 버리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성급함을 보인 것이 우리가 한 일의 전부였다.
이제 세계는 하나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예의범절도 잊은 채 무지막지하게 매도하게 한 경제위기와 금융위기. 누구의 책임 이전에 지구는 이미 하나인 것을 실감하게 하는 배움을 고통과 함께 남겨 주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쪽의 풍향만을 느끼며 지내온 우리에게 차라리 큰 회오리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중국이 있음을 전율처럼 느끼게 한다.
미국 「타임」지는 신년호 커버스토리를 중국의 인터넷으로 장식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이면서 컴퓨터 문화의 최대 골치거리로 인정되고 있는 한자 입력을 위해서 빌 게이츠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네트워크 기업가(Netreprenuer)가 마치 하나둘씩 보이지 않는 봉건 영주의 성을 쌓듯 중국을 분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미래 설계가 1,2년이나 고작 5년 후에 있다면 중국의 성장은 분명 최소한 십수년 후를 기약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세계는 하나다. 그 세계를 알려면 중국을 알아야 한다. 중국을 이해하고자 중국어를 배웠다. 그러나 우리에겐 축적된 중국이 없다. 고전 속의 중국은 있어도 생생한 중국은 우리의 정보 속에 없다. 지나간 50년간의 정보가 없다. 급성장을 자랑하는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만만디」로 발전하는 그를 알려면 그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중국은 좀처럼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라도 우리의 대중국 지식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누군가가 발벗고 나서야 겠다. 5천년 황하 문명의 역사는 몰라도 된다지만 12억 인구와 한반도의 25배 영토를 가진 그의 현재가 조만간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인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이제부터 많은 땀과 돈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모화파(慕華派)가 아닌 지화파(知華派)를 마다하지 않아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