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효자상품을 찾아라」 「호기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저마다 수출확대를 위한 「효자상품」 발굴에 나섰다. 기업들은 특히 환율급등과 동남아 금융위기 등으로 한국상품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다시 몰려오는 해외 바이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대표이사까지 나서 영업하는가 하면 「수출총력체제」를 구축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조직을 수출주도형으로 바꾸고 중소기업 유치작전에까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량과 단가를 불문하고 수출용 제품이라면 무조건 해외에 내다 팔 태세다.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그룹 회장은 물론 대표이사가 수시로 해외 영업력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삼성, LG, 대우, 현대 등 전자4사 대표이사들은 아예 세일즈맨이 되다시피 각국을 순회하며 바이어들을 직접 만나 수출 주문을 받아오기까지 하고 있다.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올해 수출목표를 대부분 지난해보다 15~30%씩 늘려잡았다. 뿐만 아니라 조직도 수출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춰 바꿨다. 또 반도체 수출 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효자수출품 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자업계는 또 80년대 수출주력품이었던 가전제품의 수출 재개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단말기 수출을 위한 대대적인 시장공략에 나서는 등 다양한 수출촉진책을 마련하고 있다. 첨단신제품인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 등 멀티미디어, 계측기, 소프트웨어, 영상프로그램 등 특정분야 특정제품할 것 없이 수출가능한 제품은 모두 수출하겠다는 게 전자, 정보통신업계의 의지다.
전자업체들의 이같은 의지로 인해 기업에 따라서는 작년 동기에 비해 1백%나 수출이 급증하는 사상최대의 수출호황을 맞고 있기도 하다. 환율조정과 구조조정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데다 업계 전체가 사운을 걸고 수출드라이버를 걸고 있는 결과다. 더구나 최근의 수출증가세는 일부 품목에 그치지 않고 전자제품 전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어 업계는 크게 고무돼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되는 것은 무조건 내다판다는 구호를 내걸고 수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조직과 인원을 수출에 맞게 개편하는가 하면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해외조직에 무게중심을 두고 지역별 책임자를 사장급으로 격상시켰으며 영업인력도 대폭 확충했다. LG전자는 수출지역을 성장, 승부, 수출지역으로 나눠 체계적인 판매전략을 세우는 동시에 현지상품에 맞는 상품개발에 나섰으며 대우전자는 수출과 국내 판매를 별도 법인화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고 있다.
전자업계는 올해 유럽연합(EU), 미주, 동구지역의 시장 성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자 올 연말까지는 현재와 같은 호황세가 지속될 것이란 성급한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수출증대가 개도국의 위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고 올 세계 경제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기 때문에 폭발적인 수출증가가 지속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DMA 제조사들은 올 수출실적을 어림잡아 7백만대, 21억5천만달러 이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해에 비해 대수로는 7백%, 수출액은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이 예상이 달성되기만 하면 올해는 「CDMA단말기 수출 원년」으로 자리잡게 된다.
PC분야의 경우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대우통신, LG전자, 현대전자 등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미 전사 차원의 수출기반을 갖추고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수경쟁에 급급했던 PC업체들이 이처럼 수출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은 IMF로 인한 내수침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 모니터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모니터업계도 올해를 수출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모니터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한솔전자, 코리아데이타시스템(KDS) 등 주요 모니터업체들은 환율폭등에 따른 모니터 수출여건이 크게 호전되고 있다고 보고 해외마케팅 채널을 풀가동하는 등 모니터 수출확대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CD롬 드라이브 및 DVD롬 드라이브 등 광기억장치 분야에서도 예외없이 수출강화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특히 광기억장치는 국내 컴퓨터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치열하게 수출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그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소프트웨어(SW)의 수출도 크게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소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수출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업체간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수출실적은 총 8천1백만달러 규모. 전년대비 무려 2백78.5%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이같은 증가세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져 지난해보다 1백60% 증가한 2억1천2백만달러의 소프트웨어 수출이 올해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올해 우리 전자, 정보통신산업 수출이 원화절하에 힘입어 전년대비 10.4% 성장한 4백66억달러에 달하는 반면 수입은 소비위축으로 전년대비 2.8% 증가에 그친 3백5억달러에 머물러 1백61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무역수지 흑자목표를 70억달러로 책정한 것과 비교해 보면 두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한마디로 전자, 정보통신산업 수출이 우리 경제의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및 기업들은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수출만이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해 나가는 선봉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 정보통신산업 전부가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 정보통신산업 업종 중에서도 새로운 유망주로 부상하는 산업이 있는가 하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산업도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발표한 반도체, 컴퓨터, 음향기기, 컬러TV, VCR, CRT, 테이프, 전자레인지, 냉장고, 전화기 등 10대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지난해 수출실적에 따르면 컬러TV, VCR, 전자레인지, 음향기기 등 가전제품의 수출은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컴퓨터, 전화기 등 정보통신기기 수출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 정보통신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체에서 수출 1위의 자리를 지키로 있는 반도체는 몇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국제 반도체가격의 폭락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수출이 줄기 시작해 9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전년대비 2.3% 감소한 1백74억2천4백만달러 수출에 그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반도체의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올해 반도체 수출이 되살아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IMF체제로 인한 투자위축과 반도체가격 하락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수출이 전년대비 9% 늘어난 1백93억3천3백만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와 함께 휴대전화도 수출에 있어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휴대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선전화기 수출은 8억5천3백만달러로 96년 4억4천9백만달러보다 무려 9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휴대전화의 수출증가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10대 주종 품목 중 지난해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전화기(60.3%), 냉장고(18.6%), 컴퓨터(14.7%), CRT(4.7%) 등 4대 품목이며 나머지 6대 품목은 적게는 2.3%(반도체)에서 많게는 38.5%(VCR)까지 감소했다.
아무튼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은 모처럼 조성된 수출확대 분위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전자, 정보통신업체의 수출총력전을 지원해야 할 정부와 금융권은 지원을 하겠다는 말만 할 뿐이다. 수출용 원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수입신용장 개설을 서두르지만 금융권은 업체당 일별, 건별 한도를 설정해 수입신용장을 개설, 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자, 정보통신업체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은행권이 수입신용장 개설을 정상화해 기업들이 원자재를 조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