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59)

김지호 실장은 송수화기를 통해 다시 물었다.

『김 박사, 인위적으로 절체하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이오?』

『산화철(酸化鐵)을 이용했소. 접점이 붙어 있는 스프링을 산화시켜 미리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접점이 다른 접점으로 연결되어 별도의 프로그램이 동작하게 되어 있소.』

『산화철?』

『그렇소. 평상시 탄성을 준 접점이 산화되어 탄성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접점으로 연결되는 것이오. 이 독수리 칩도 그러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소.』

『그렇다면 자동절체시스템이 가동되면서부터 접점의 스프링이 산화를 시작했고, 맨홀 화재 순간에 완전한 산화가 이루어져 접점이 다른 쪽으로 접속되면서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구동된 것이오?』

『아니요, 그 이전이오. 절체시스템이 동작하기 전부터 산화가 시작된 것이고, 시스템 설계 당시부터 그 시간을 계산하고 산화의 정도를 산출하여 제조되었을 것이오.』

『그러면 이미 맨홀에 화재가 발생한 시간을 알고 산화처리를 했다는 것이오?』

『그렇소. 고도의 기술이 적용되어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어 접점이 옮겨지게 한듯 하오.』

『김 박사, 그처럼 정확하게 산화처리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소. 방금 전이었소.』

『그래, 그 친구는 무어라고 합니까?』

『이러한 상황을 믿으려 하지 않소.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 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했소. 특히 이 독수리 칩에 적용된 기술은 고도의 프로그램 능력을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소.』

『그 칩의 제조사는 분명히 일본으로 되어 있었소. 그것은 위성에 꽂혀 있던 독수리 칩도 마찬가지였소.』

『일본상표가 붙은 커스터머 칩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만든 제품이 많소. 그 때문에 이 독수리 칩도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소. 외국에서 제조되어 일본 상표를 붙여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오.』

『김 박사, 어쨌든 그 커스터머 칩을 만든 곳이 어딘지는 파악해야 하오. 이번 맨홀 화재와 위성장해, 그리고 자동절체 시스템 고장으로 인한 통신대란의 원인규명을 위한 단서는 그 독수리 형상이 그려진 칩이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오. 다른 단서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현재 상황으로는 없소.』

『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