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경제위기와 산업 혁신 정책

白萬基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지금 우리 경제는 IMF 개혁프로그램에 따라 산업구조 조정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과거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 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을 맞아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정부, 기업, 개인 가릴 것 없이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눈 앞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성장만을 거듭했었다.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매년 수출이 증가하고 국민소득도 늘어나 1만 달러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심코 굴러가는 바퀴의 힘만 믿었다. 그 결과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치료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패러다임의 몰락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즉, 60∼70년대의 노동, 70∼80년대의 설비투자 확대에 이어 90년대 기술, 지식이 주도하는 산업구조 전환에 실패한 결과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기술혁신 주도형 경제성장」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 우리는 금융, 외환시장 불안여파와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산, 투자, 고용 등 실물기반이 급속히 붕괴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는 당장 급한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촉진하는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으며 기업은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연이은 부도사태와 자금난에 따라 당장 매출액과 연결되지 않는 기술개발 투자를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서 고환율에 따른 상대적인 임금하락으로 인해 과거 고임금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산업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됨으로써 일시적인 수출확대 및 경제회복을 달성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선진경제로의 진입을 위한 기술, 지식이 주도가 되는 산업구조 전환을 저해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의 기술혁신구조 정착이야말로 21세기의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지난 80년대 극심한 경제불황기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기업은 설비투자를 감소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중년층의 자살마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본기업들은 오히려 기술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지속 확대했다. 이는 고도의 기술과 품질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혁신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우리도 작금의 IMF위기를 혁신주도형 성장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와 같은 경험을 겪었던 멕시코는 3년이 지난 오늘날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하였으나 이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인건비, 노동집약적 산업에 의존한 경제의 양적 확대에 불과한 것이라는 평가를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우리 정부와 기업은 단기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기술 및 지식경쟁력 강화부문에 대한 투자를 삭감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멕시코가 밟아온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우리 경제가 1만 달러 이하의 중진국 수준에서 만족하면 몰라도 다가오는 21세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 지식, 정보가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경제구조로 가야 한다.

섬유, 신발 등 전통산업의 경우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낮은 인건비, 단순한 설비투자의 양적확대에 따른 대량생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수출방식으로는 환율의 재하락에 따른 경쟁력 약화라는 대내외 경제환경변화에 더 이상 대처할 수 없다. 오히려 똑같은 섬유산업이라도 패션디자인, 첨단 섬유소재 등 기술, 디자인 개발을 통한 고부가가치화, 자체 브랜드 개발, 품질개선 노력 및 공격적 해외마케팅등과 같이 기술혁신을 강화해 나감으로써 조만간 환율의 재하락에 따른 상대적 저임금의 비교우위 상실에 대처해야 한다.

정보통신과 같은 첨단산업의 경우에는 산업발전전략의 수립에 있어서 초기부터 수출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내수시장 위주의 첨단산업 육성정책은 수입부품과 지나친 로얄티 지출부담으로 인해 오히려 IMF경제위기 극복에 짐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정부의 혁신정책은 국가기술혁신체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가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외양간을 고치고 나서(IMF경제위기 극복) 기를 소가 없다면(성장잠재력 잠식 또는 기술, 지식 부족)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MF체제하에서는 기술력 강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체질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경쟁우위 요인을 창출하고 당면한 무역역조의 근원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기술과 정보를 두 축으로 산업정책을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고 선진국과의 지식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 고용, 금융, 산업구조 등 국가 전체의 운영시스템을 혁신주도형으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