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가장 큰 경쟁자는 물론 일본이다. 생산능력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일본의 우리나라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을 벌여왔다.
D램의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했을 때에도 한국과 일본은 협력자이자 경쟁자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D램의 가격 폭락이 시작된 이후 일본 업체들의 반도체 분야 전략은 궤도를 수정해왔다.
경기변동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큰 D램 사업 비중을 축소하고 대신 비메모리 분야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설비투자를 축소하고 신규 투자를 연기 또는 보류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D램 분야에 대해서는 양산기술에 대한 투자보다는 선행 제품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D램보다는 비메모리, 플래시 메모리, CPU 등의 사업을 주력 부문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업체들의 반도체 분야 중장기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원칩화를 통한 세계 시장 지배」로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D램 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거나 규모를 줄이는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제철세미콘이 올해초 전격적으로 D램사업 포기를 선언했으며 오키사는 D램사업의 대폭축소와 64MD램에 대한 투자 철회를 공식화했다.
일본의 5대 메이저 반도체 업체들의 D램 설비 투자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최대 D램업체인 NEC의 경우, 지난해 투자규모가 96년보다 9.5%가 줄어든 16억달러에 그쳤다. 3~5위인 히다치, 미쯔비시, 후지쯔사 역시 D램 분야의 투자규모가 전년 대비 6~9% 정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본업체들의 이같은 D램 분야 투자 축소 움직임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업체들이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3백㎜ 웨이퍼 가공라인(FAB) 투자가 거의 모두 연기됐다.
대부분 기존 라인을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의 투자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쯔비시의 경우는 아예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20% 가까이 축소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다.
이같은 일본업체의 메모리 분야 투자 위축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최대의 호황기이던 95년 이후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대부분 2백㎜(8인치) 웨이퍼 설비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대부분의 일본 업체들은 아직까지 2백㎜ 전환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16MD램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64MD램 제품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2백㎜ 설비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D램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은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승철 기자>